도쿄 2020은 지난해 대한민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고 그 중심엔 양궁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여자 양궁 팀은 8회 연속 올림픽 단체전 챔피언에 등극했으며 남자 팀도 6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오진혁은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결승전의 마지막 화살이 꽃힌 활시위를 당기자마자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꽂히기도 전에 내뱉은 강렬한 한마디 ‘끝’이라는 명대사를 남긴 후 대만에 세트스코어 6-0으로 대한민국의 단체전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는 도쿄 2020을 앞두고 공공연히 현역 생활의 마지막을 올림픽 무대에서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지만, 41살의 궁사는 2022년 다시 대한민국 대표로 활을 잡았습니다. 그는 왜 활을 놓지 못했을까요?
Olympics.com이 대한민국 양궁의 살아있는 전설 오진혁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를 소개합니다.
1.'천재 소년'으로 남을 뻔한 양궁 전설
오진혁은 1992년 충남 중앙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무실에 전시된 경기용 활을 보고 양궁부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천재 소년'이라 불리며 1998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했고, 이듬해 충남체고 3학년 시절 치열한 성인 국가대표 선발전에 당당히 고등학교 신분으로 자리를 꿰찼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드니 2000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약 9년이라는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실업팀을 찾지 못하며 활을 놓을 뻔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현 소속팀 현대제철의 장영술 전 감독이 결국 그를 품었고, 2009년부터 태극마크를 다시 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태극마크를 잃어버리자 활쏘기가 두려워졌어요. 매일매일 '내가 기고만장했구나'하고 후회만 했어요." (오진혁, 런던 2012 개인전 우승 후)
2. '천재 궁사'로 부활: 첫 남자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양궁은 파리 1900 이후 뮌헨 1972에서 올림픽 프로그램에 복귀했습니다. 단체전은 서울 1988에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혼성 단체전은 도쿄 2020에서 데뷔했습니다.
여자 궁사들이 로스앤젤레스 1984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메달을 안겨주며, 올림픽 양궁 강호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서향순과 김진호가 개인전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줬습니다.
남자 양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땄고, 박성수가 개인전 첫 메달로 은메달을 팀 코리아에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오진혁이 31살이 되던 해 올림픽 데뷔전을 치른 런던 2012에서 대한민국 양궁 사상 처음으로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궁사가 됐습니다.
더 보기: 양궁의 혼성 단체전은 어떤 종목일까요?
3.어깨와 맞바꾼 궁사 인생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은 올림픽만큼이나 어려운 대회가 국가대표 선발전이라고 모두 입 모아 말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당연하게 국가대표 자리를 꿰찬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진혁은 대한민국 남자 양궁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8명 중 상위 3명에게만 주어지는 리우 2016행 티켓을 딸 수 있는 최종 선발전에서 6위를 차지하며 2연속 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는 당시 35세로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모두가 그의 현역 은퇴를 예상했습니다.
그는 2011년부터 오른쪽 어깨 부상에 시달렸고, 2017년 나날이 심해지는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사에게 어깨 회전근 4개 중 1개만이 남아있다는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은퇴를 권고받게 됩니다.
그러나 오진혁은 마지막 올림픽의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 수술을 받지 않았고 남은 1개의 회전근에 의지하며 활쏘기를 이어나가기로 합니다.
베테랑 궁사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연기가 확정된 이후 언제 대회가 열려도 좋은 컨디션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를 수 있도록 훈련하겠다고 밝히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마지막이니까 끊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올림픽이라는 무대에 꼭 다시 한번 서고 싶다는 열망과 목표가 강해요. 어린 시절 꿈도 올림픽 금메달이 아닌 올림픽 출전이었죠.” (오진혁, 2020년 동아일보)
그리고 그는 9년 만에 23살 어린 후배 김제덕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2021년 두 번째 올림픽 무대로 향했습니다.
4.역대 최고령 금메달리스트
오진혁은 도쿄 2020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를 새로 작성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쏜 10점 만점으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거머쥐며, 39세 11개월의 나이로 팀 코리아에서 역대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진종오가 36세 10개월의 나이로 리우 2016 올림픽 50m 권총에서 챔피언에 올랐을 당시 역대 최고령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5년 만에 갈아치웠습니다.
5.활을 놓지 못한 이유?
대한민국 양궁계의 큰형님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에 "저는 양궁장에 있어야 '사는 맛'이 납니다. 치열한 선발전이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좋은 후배들이랑 경쟁하는 자체가 즐겁습니다"라고 말하며 양궁에 대한 사랑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는 성공적으로 도쿄 대회를 마치자마자 또 다른 목표에 도전했습니다: 바로 ‘그랜드슬램’이었습니다. 오진혁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섰지만,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는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오진혁은 지난 9월 미국 사우다코타 양크턴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도쿄 2020 금메달 드림팀' 김우진과 김제덕과 함께 세계선수권 단체전도 섭렸했지만, 개인전에서는 16강 탈락으로 다시 쓴맛을 봤습니다.
대회를 마친 후 오진혁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고, 이어서 "선수 생활에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남았어요"라고 밝히며 양궁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암시했습니다.
그는 어깨 주사 치료를 받으면서 7개월 동안 치러진 선발전에 임했으며, 2022년에도 당당히 국가대표로서 활시위를 당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