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의 개척자들

스피드스케이팅은 이미 팀 코리아 동계 올림픽의 주요종목이라고 할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번 베이징 2022 올림픽에서도 차민규, 김민석, 김민선 등 여러 선수가 메달을 노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첫 메달리스트는 누구였고,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는 누구였을까요? 지금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있기까지 어떤 선수들이 역사를 개척해왔는지 돌아봅니다.

이정석 기자
촬영 2019 Getty Images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수 개인에게는 통할 수 있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 그 중에서도 한 종목에는 하늘이 내리는 금메달이란 존재하기 쉽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도전하는 시간과 노력, 재능, 투자 등 수많은 요소가 어우러져 올림픽 메달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2010년 밴쿠버 올림픽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이런 결실을 맺게 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첫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베이징 2022에서 성공의 역사를 이어갈 채비를 마친 팀 코리아 스피드스케이팅의 선구자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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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계 올림픽 첫 종목, 스피드스케이팅

한국 선수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첫 출전한 것은 1948년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러나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인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열린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 올림픽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출전해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열린 생모리츠 1948 동계 올림픽에는 이효창, 이종국, 최용진 세 선수가 500m와 1,500m, 5,000m에 출전해 대한민국 첫 동계 올림피언이 됐습니다. 이렇게 스피드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은 동계 올림픽에 한국이 출전한 첫 종목이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으며, 코르티나 담페초 1956 대회까지 한국이 선수단을 파견한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 하나 뿐이었습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개척자, 이영하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영하는 현역시절 1976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재능을 드러냈고, 197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유난히 올림픽에선 인연이 없었습니다.

1976년 올림픽에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경험을 쌓은 이영하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는 대한민국 사상 첫 동계 올림픽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메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500m 레이스를 앞두고 훈련 중 바리케이드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정작 레이스에선 19위에 그치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1976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이영하에 이어 2위에 그쳤던 에릭 하이든이 5관왕을 차지했기에 더 아쉬움이 짙었습니다.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에서는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단계여서 메달권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데에 의미를 두는 상황에서 젊은 북한선수를 10,000m에서 꺾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영하의 빈자리를 메웠던 것은 배기태였습니다. 배기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쌓았고,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노렸습니다. 특히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1987년 월드컵 3차대회 5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배기태는 아쉽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500m에서 5위에 올라 당시까지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바 있습니다.

대한민국, 동계 올림픽 첫 메달

다음 대회인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이영하는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올림픽 무대를 다시 밟게 됩니다. 그의 지도를 받은 김윤만은 500m에 출전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0.01초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의 동계 올림픽 첫 메달은 쇼트트랙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에게 첫 메달을 안겨준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이었습니다.

올림픽에 한 명의 선수가 출전한다는 것은 한 명의 올림피언이 늘어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올림픽 위원회와 종목 협회에서 한 명의 선수를 출전시키려면 국가대표 선발, 올림픽 출전자격 획득, 올림픽 출전과 관련한 행정처리, 올림픽 대비 훈련 등 수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올림픽 출전을 거듭하면, 이 과정에서 필요한 준비는 더 정교해지고, 메달 획득을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가게 됩니다.

그렇게 올림픽의 전통이 쌓여가고, 메달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세계 최고의 무대가 주는 무게감일 것입니다. 이런 세월, 무게감을 이겨내야 하기에 올림픽 메달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만큼 값진 성과입니다.

이강석
촬영 2010 Getty Images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메달리스트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 김윤만 남자 1,000m 은메달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 이강석 남자 500m 동메달

2010년 캐나다 밴쿠버

  • 모태범 남자 500m 금메달
  • 이상화 여자 500m 금메달
  • 이승훈 남자 10,000m 금메달
  • 모태범 남자 1,000m 은메달
  • 이승훈 남자 5,000m 은메달

2014년 러시아 소치

  • 이상화 여자 500m 금메달
  • 김철민, 이승훈, 주형준 남자 팀추월 은메달

2018년 대한민국 평창

  • 이승훈 남자 매스스타트 금메달
  • 이승훈, 정재원, 김민석 남자 팀추월 은메달
  • 차민규 남자 500m 은메달
  • 이상화 여자 500m 은메달
  • 김보름 여자 매스스타트 은메달
  • 김태윤 남자 1,000m 동메달
  • 김민석 남자 1,500m 동메달

한국 쇼트트랙이 올림픽 무대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던 시기, 스피드스케이팅은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의 두 번째 메달이 나왔고, 이번에도 종목은 남자 500m였습니다. 이강석은 당시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어, 기대가 높았지만 동메달에 그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두 번째 메달을 획득했다는 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예열을 마친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은 밴쿠버 2010에서 모태범이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김윤만이 1992년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고, 이강석이 2006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는 사이, 세계 정상권 스프린터로 발돋움하며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014년 소치 대회까지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규혁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바도 무시해서는 안되겠죠. 이규혁은 자신도 선수로 출전해 기록을 내야하는 가운데에도, 어린 동료선수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전수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발전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발전시킨 인물은 앞서서도 한 번 언급했던 바 있습니다. 이영하. 우리가 그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후배이자 제자들의 말을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규혁은 이영하 전 감독을 "다른 지도자들과 확실히 달랐던 분"이라며, "과거 훈련환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는데, 이영하 전 감독님은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감독님이 선수시절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눈으로 보고 익힌 선진 훈련방법을 한국에 도입해주셨던 것이죠"이라며, 이영하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심어준 DNA를 돌아봤습니다.

한국 동계스포츠 중 올림픽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소중한 선구자들이 일궈놓은 전통을 토대로 이번 베이징 2022 동계 올림픽에서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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