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8월 27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의 로열 아레나에서 열린 2023 세계개인전배드민턴선수권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안세영이 스페인의 카롤리나 마린(세계랭킹 6위)을 2-0(21-12, 21-10)으로 물리치고 한국 선수로는 46년의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마린과의 맞대결에서 최근 4연승을 거두며 5승 4패로 근소한 우위를 지키고 있는 안세영은 초반부터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준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야마구치 아카네를 제압하고 올라온 마린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초반 탐색전 이후 마린이 수비에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면서 안세영이 10-5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인터벌 이후 점수 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18-9가 됐습니다. 침착하게 첫 게임을 21-12로 마무리한 안세영은 두 번째 게임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4-0 리드를 잡았습니다.
안세영이 강력한 스매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손쉽게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였지만, 마린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하면서 10-10 동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마린의 결정적인 역전 기회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다시 안세영이 앞서나갔고 10연속 득점에 성공하면서 20-10까지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챔피언십 포인트에 몰린 마린의 마지막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안세영이 마침내 사상 최초의 여자 단식 우승을 팀 코리아에 안겼습니다.
안세영: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
시상식 무대에서 "오늘은 제가 챔피언이네요. 이겨서 너무 행복해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영어로 짦막하게 소감을 밝힌 안세영은 승리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냥 즐기니까 다 잘되는 것 같아요. (경기를) 즐겼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어서 믹스트존에서 Olympics.com과 만난 안세영은 "너무 뿌듯하고, 너무 행복해요. 제가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이만큼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된 건 잘 달려온 덕분이지 않나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 뿌듯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었으니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는 아시안게임이랑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라고 당당히 포부를 밝힌 안세영은 올림픽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정말 순탄하지만 언젠가는 무너지는 날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런 날들을 잘 이겨내고 하다보면 어느새인가 목표로 했던 파리 올림픽을 잘 이겨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또 앞으로 제가 부족한 점이 더 많으니까 그걸 보완해서 파리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서승재-채유정, 혼합 복식에서 20년 만의 우승
이보다 앞서 열린 혼합 복식 결승전에서는 서승재-채유정 조(세계랭킹 5위)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스웨이-황야총 조를 2-1(21-17, 10-21, 21-18)로 물리치고 김동문-나경민 조가 우승을 차지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경기 초반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서승재의 스트로크와 정스웨이의 범실이 겹치면서 한국이 9-5로 앞서나갔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저력을 발휘하며 게임 중반에 동점을 이루긴 했지만, 한국의 왼손잡이 듀오가 다시 주도권을 잡으면서 점수 차를 벌린 끝에 첫 게임을 21-17로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세계랭킹 1위의 벽은 높았습니다. 반격에 나선 정-황 조는 공격과 수비에서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주며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21-10으로 두 번째 게임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게임에서 예상을 뒤엎고 강공을 펼친 한국은 7-1로 앞서나가며 우승의 희망을 이어나갔습니다.
코트를 가로지르는 채유정의 스매싱이 사이드라인 선상에 떨어지면서 10-5가 됐고, 엄청난 랠리 끝에 정스웨이의 범실이 나오면서 한국이 12-6 리드와 함께 승기를 잡았습니다.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나간 한국은 20-16, 챔피언십 포인트를 잡았고, 중국의 끈질긴 추격에도 불구하고 결국 21-18로 세 번째 게임에서 이기면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채유정은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뜻깊은 날이 올 거니까 성적이 안나더라도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준비를 한다면 이렇게 뜻깊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우승 소감을 밝혔습니다.
같은 날 저녁 홈 팀 덴마크와 남자 복식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서승재는 "혼합 복식에서 우승한 건 잊고 남자 복식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몸 관리를 잘 하겠습니다. 덴마크 관중들이 응원을 많이 하겠지만 주눅들지 않고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세 번의 결승전, 세 개의 금메달
한편, 일요일 저녁의 마지막 경기로 열린 남자 복식 결승전에서는 강민혁-서승재 조가 덴마크의 킴 아스트루프-안데르스 라스무센 조에 2-1(14-21, 21-15, 21-17)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첫 게임에서는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덴마크가 초반 기선을 제압하면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였지만 서승재의 몸을 날리는 수비가 빛을 발하면서 따라붙기 시작한 한국이 9-9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강민혁의 타점 높은 강력한 스매싱을 앞세워 덴마크에 맞섰지만 결국 첫 게임을 14-21로 내주고 말았습니다.
서승재는 불과 4시간 전에 혼합 복식 결승전을 치른 터라 체력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면서 두 번째 게임 초반 한국이 4-1로 앞서가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강민혁이 네트 앞에서 반대편 구석을 노리는 절묘한 백핸드 발리로 11-7을 만들었지만 덴마크가 끈질기게 추격한 가운데 아스트루프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결국 14-14 동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강민혁이 강력한 스매싱으로 득점하면서 한국이 두 번째 게임을 21-15로 가져갔습니다.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 세 번째 게임에서는 4-4 동점 상황에서 강민혁과 서승재가 환상적인 수비에 이어 강력한 스매싱을 번갈아 시도하면서 득점에 성공했고, 덴마크의 범실까지 겹치면서 7-4로 한국이 앞서나갔습니다. 한국은 집요하게 대각선 코스를 공략하면서 11-7까지 점수 차를 벌렸는데요, 인터벌 이후 덴마크의 거센 반격을 침착하게 막아내면서 20-17까지 3점차 리드를 지켰습니다. 결국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서승재가 강력한 스트로크로 정면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이날 한국의 세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무대에서 인터뷰에 응한 강민혁은 "결승전에 올라와서 덴마크 관중들을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긴 하지만 제 경력에서 중요한 우승을 차지해서 행복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날 혼합 복식에 이어 남자 복식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2관왕에 오른 서승재는 "믿기지 않지만 우승해서 기분이 좋고, 드디어 이런 날이 와서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