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cs.com이 7월 22일부터 30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2023 국제펜싱연맹(FIE)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랭킹 포인트 획득과 단체전 5연패에 도전하는 한국 펜싱의 자존심 구본길을 단독으로 인터뷰했습니다.
한국 남자 사브르 간판스타 구본길은 누구?
1989년생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03년 대구 오성중에서 처음으로 펜싱 검을 잡았습니다.
구본길은 런던 2012에서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구본길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 16강에서 탈락했지만,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 원우영 현 사브르 남자 대표팀 코치, 오은석과 함께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거머쥐며 한국 펜싱 사상 첫 번째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런던 2012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팀 코리아가 수확한 통산 100번째 금메달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양정모가 몬트리올 1976 레슬링에서 딴 금메달).
구본길은 리우 2016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로 나섰고, 도쿄 2020 사브르 단체전에서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과 함께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Olympics.com (이하 Olympics): 먼저,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멀지 않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데요, 이번에 우승하면 남자 사브르 단체전 5연패(2017, 2018, 2019, 2022)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구본길: 사실 욕심나요. 저희 멤버(김준호, 오상욱, 하한솔)도 좋지만, 다른 팀들은 세대교체를 하는 중이기에 저희도 아직까진 기회가 있다고 봐요. 금메달을 딸 수 있을 때 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치님들도 말씀하시는 부분이 이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다는 거 자체가 의미있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고, 저희도 같은 생각이에요.
역사의 현장에 제가 있고, 그 당사자가 저이기에, 멈출 수 없습니다. 5연패가 목표입니다.
파리 2024 원동력: 아들과 성장하는 후배들
Olympics: 구본길 선수는 사실 세계선수권 금메달(금 4개, 은 3개, 동 2개)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금 5개 은 1개), 아시아선수권(금 16개, 은 3개, 동 1개), 그리고 런던 2012와 도쿄 2020에서 딴 대망의 올림픽 금메달까지 다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파리 2024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구본길: 개인적인 목표는 지난 3월에 태어난 아들(구우주)을 위해서입니다. 파리 올림픽은 내년에 열리지만, 사실 그때가 돼서 제가 메달을 딴다고 해도 아이가 알지 못할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선수로서 또 다른 목표가 생겼어요. 제가 펜싱 선수라는 것을 우주가 인지할 때까지는 검을 놓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올림픽 메달을 따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그게 저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돼줄 거에요.
Olympics: 사실 한국 남자 사브르는 이제 '월드클래스'잖아요. 태극마크를 향한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진 않았나요?
구본길: 사실 한국 팀도 세대교체가 되고 있기에, 잘하는 어린 선수들도 많이 눈에 띄죠. 그렇지만, 그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솔직히 정환이 형(39세)도 그렇고, 저도 이제 34살이기에 밖에서는 '나이 들면, 이제 후배들에게 기회를 양보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소리도 종종 듣죠. 그러나, 외국팀만 봐도 주축이었던 베테랑 선수들이 세대교체가 잘 준비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무책임하게 그냥 팀을 나간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렇기에 저는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팀에서 중심을 잡고 버티면, 후배들이 저희와의 경쟁을 통해 성장해서 대표팀에 들어오면 결국 팀이 강해지는 거죠.
굳이 비교하자면, 저희도 저변이 확대돼 양궁 같은 시스템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죠. 누가 오래 태극마크를 지켰고, 예전에 잘했고는 중요하지 않고, 철저히 랭킹 포인트로만 평가합니다. 그렇기에 저도 더 동기부여가 생기고, 팀도 더 경쟁력이 생겼죠.
올림픽 챔피언의 멘털 관리: "어떤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기"
Olympics: 사실 구본길 선수는 화려했던 올림픽 데뷔전 이후 리우 2016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로 선정돼 큰 주목을 받았죠 (한편, 도쿄 2020 개회식 기수는 김연경과 황선우였습니다). 하지만, 그 부담감 때문인지, 16강에서 탈락하며, 개인전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을 땐 어떤 심정이었나요?
구본길: 선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였던 것 같아요. 그 시기가 펜싱에서도, 인생에서도 슬럼프였다고 생각해요.
사실, 첫 올림픽인 런던 2012에서 그렇게 엄청난 관심을 주실 줄 몰랐어요. 그때 제가 23살이었는데 무서운 게 없고, 패기가 넘쳤어요.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첫 올림픽을 마쳤지만, 리우 2016에서 실패의 좌절감을 맛봤죠.
아무리 국제 무대에 많이 서봤지만, 올림픽의 중압감이란… 두 번째 올림픽에서 그 왕관의 무게를 알고 뛰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정말 무거웠던 것 같아요. 브라질에서 귀국해 공항에 들어섰을 때 그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요.
Olympics: 그러나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2021년 9년 만에 도쿄에서 올림픽 시상대 정상에 올르셨죠.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하셨나요? 올림픽 챔피언의 멘털 관리법이 궁금해요!
구본길: 리우 2016이 끝나고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선수촌에 가서 펜싱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후, 이제 밖에서 몇몇 분들이 알아봐 주시기는 하지만, 선수촌에서는 그냥 펜싱 선수 중 한 명이에요. 그런 걸 매년 느끼다 보니깐, 그 힘든 시간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좀 많이 느끼게 됐죠. 물론 좋았던 시간도 영원하지 않죠.
다시 월드컵 대회에 나서면서 안 좋았던 지난 일을 잊게 되고, 다시 몸도 마음도 다시 일어서게 되더라고요.
리우 2016은 저를 가장 힘들게 했지만, 제가 펜싱을 더 '오래' 할 수 있게 하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만들어줬어요. 저는 이제 어떤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죠.
물론 이기는 것은 중요하고, 메달을 따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겠죠. 그러나 그다음 날이 되면 체육관에서 다시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구본길일 뿐이죠. 흔들리지 않고 그다음을 준비하고 전진할 생각만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도쿄 2020에 갈 기회가 주어졌고, 저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이제 펜싱 종주국의 열광적인 홈팬들 앞에서 열리게 될 파리 2024에서 더욱 중압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준호, 상욱이를 포함한 동생들이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올림픽에서 기쁨도 좌절도 모두 맛본 제가 옆에서 잘 이끌어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