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도움을 받는 동계 올림픽 약소국 선수들

가나의 아콰시 프림퐁과 인도의 비슈와라지 자데자는 고국에서 주류가 아닌 동계 스포츠 종목의 선수이지만, 혼자라고 느끼진 않습니다. 2월 4일에 시작되는 베이징 2022를 앞두고 Olympics.com이 두 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 기사작성 Jo Gunston
Awasi Frimpong and US coach
(2018 Getty Images)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1894년 올림픽 운동(Olympic Movement)을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올림픽 슬로건을 도입했습니다. 2021년 7월 20일부터는 공식적으로 이 슬로건에 "함께 (together)"라는 단어가 추가되었습니다.

올림픽 운동은 스포츠가 가진 통합의 힘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새해와 내년 2월 4일에 시작되는 베이징 2022 동계 올림픽을 앞둔 우리는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나의 아콰시 프림퐁과 ROC

고국인 가나에서 칭송을 받고 있는 **아콰시 프림퐁**은 가나 최초이자 최초의 흑인 남자 스켈레톤 선수로서 **평창 2018**을 통해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켈레톤에 출전한 선수 30명 중 30위를 차지했지만,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림퐁은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에 앞서 가진 Olympic.com과의 인터뷰에서 "장벽을 깨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해냈습니다. 하지만 프림퐁은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는 선수로서 발전하고 싶었고, 베이징 2022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는 다른 트랙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가나 출신이었던 프림퐁은 8살에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이후에는 2002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그는 유타 트랙에서 연습했지만 다양한 장소가 필요했고, 다른 슬라이딩 경기장에 대해 알고 배우는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프림퐁은 2019년 11월, 소치 2014를 위해 지어진 트랙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컵에 참가한 후 ROC 팀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러시아봅슬레이협회 회장, 엘레나 아니키나는 프림퐁을 만난 후 그가 "열려있고, 긍정적이며, 스켈레톤을 진심으로 열망한다"는 점을 느끼고, 프림퐁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어 프림퐁과 그의 가족은 2021년에 10주 동안 러시아에 머물렀고, 9월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기간 동안 프림퐁은 ROC 국가대표 시니어 코치, 데니스 알리모프에게서 체계적이고 기술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프림퐁이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 것은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말하는 그 날을 다시 한 번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창 2018 당시에는 9개월 된 딸이 프림퐁이 올림픽의 꿈을 이루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사실도 이런 노력을 하게 하는 힘입니다. 2022년 1월 16일이 되면, 프림퐁이 베이징 2022에 출전할 수 있는 랭킹에 들어가는 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만약 베이징 동계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ROC 팀의 추가 시스템 지원을 받게 될 전망입니다.

인도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 비슈와라지 자데자

잘 닦인 길이 없을 때에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길을 만드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인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비슈와라지 자데자가 올림피언이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통해 배운 교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도 서부, 아메다바드에서 태어난 자데자는 성공한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자데자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올림픽 종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으로 이주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올림픽을 향한 꿈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자데자는 Olympics.com과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의 롱트랙 스케이팅은 인도에서의 크리켓과 같은 위상을 가집니다"라고 말하며, 유럽 여러나라 중에서도 네덜란드에 최종 정착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크리켓을 하고 싶다면 인도로 가야합니다. 축구를 하고자 하면 브라질로 가야할 거고요. 롱트랙을 하려면 네덜란드로 와야하는 거죠. 그게 제가 네덜란드로 이주한 이유입니다."

자데자가 초기에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하는 동안 지역 뉴스에서 그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트레이너 빔 니우벤하위젠이 자데자의 결단력이 대단하다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지금까지 자데자를 지도하고 있는 니우벤하위젠은 "스피드 스케이팅을 위해 인도에서 여기까지 올만큼 미쳐 있다면, 나도 그 사람을 지도할만큼 미쳐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데자는 아직 올림픽의 꿈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부상으로 평창 2018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크게 좌절한 그는 시간을 좀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데자는 인도 히말라야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스케이트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보았던 것을 그대로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었죠. 그러나 자데자가 스케이트를 탄 곳은 해발 4,500m였습니다.

그는 인도의 자무와 카슈미르 주에 위치한 레 지역 마을 사람들을 고용해 눈덮인 초모리리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자데자는 하키 재단이 지원하는 500명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작은 마을도 발견했습니다. 이 선수들은 NHL에서 기증한 가장 비싼 장비를 사용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단 코치는 그 지역을 방문해 아이스하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궁극적으론, 전세계의 선수들이 이곳으로 와서, 인도에서 스피드 스케이트를 탔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선 여전히 스피드 스케이팅은 새로운 스포츠입니다." 자데자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이 스포츠를 다른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목표를 이야기했습니다.

자데자는 자신의 꿈을 좇음으로써 동계 스포츠가 자신을 위한 종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동계 스포츠 체육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받게되는 사람들의 도움, 어떤 때엔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의 도움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하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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