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애보트, 올림픽 우승을 끝까지 몰랐던 골프 챔피언

올림픽 역사는 수많은 챔피언과 신기록,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화,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존재하지요. 저희는 매주 과거의 올림픽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에는 올림픽 우승을 거두고도 끝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미국의 골퍼, 마가렛 애보트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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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이 아직 올림픽의 전통으로 자리잡기 전인 아주 옛날, 골퍼 마가렛 애보트는 올림픽 우승을 거둔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되었지만 자신이 챔피언이란 사실을 끝까지 몰랐습니다.

파리 1900은 올림픽 최초로 여성 스포츠가 포함된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 선수들 22명 중에는 당시 파리에 거주중이던 학생, 애보트의 이름도 올라 있었습니다.

근대 올림픽의 두 번째 대회에서 여성들이 참가한 종목은 골프, 테니스, 요트, 승마, 크로케의 다섯 종목이었습니다.

배경

1878년 인도에서 태어난 마가렛은 미국에서 자랐고, 휘턴에 있는 시카고 골프 클럽에서 남자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배우며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열정적인 골퍼이자 시카고 헤럴드(The Chicago Herald)의 작가 겸 편집자, 메리 애보트의 딸이었던 마가렛은 골프에서 거둔 성공을 통해 지역의 유명 인사로 떠올랐습니다.

1899년에 모녀는 파리로 이주하였고, 마가렛은 현대 조각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오귀스트 로댕,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와 같은 유명인들과 예술을 공부했습니다.

이듬해,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에 애보트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콩피에뉴에서 열리는 국제 골프 대회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머니 메리와 함께 그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본인도 몰랐던 업적

1900년의 파리 올림픽은 같은 해에 열린 파리 엑스포(만국 박람회)와 겹쳐져 6개월 동안 열렸고, 박람회에 포함된 시범 행사들은 사람들이 올림픽 공식 프로그램들과 혼동할 정도로 많이 치러졌습니다.

10월 4일 마가렛은 9홀 토너먼트에서 47를 치며 각각 49타와 53타를 기록한 미국의 폴린 휘티에와 다리아 프랫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머니 메리는 65타로 7위에 올랐죠.

마가렛은 자신이 그냥 콩피에뉴 지역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올림픽”이란 단어는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올림픽 표준인 금, 은, 동메달은 다음 대회인 세인트루이스 1904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우승을 했지만 메달이 아닌 도자기를 우승 트로피로 받았습니다.

그 이후

자신도 모르게 미국 최초의 여성 올림픽 챔피언이 된 애보트는 프랑스에 남았고, 1902년에는 프랑스 여자 챔피언십의 전신이었던 페미나 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 후 애보트는 미국의 풍자 작가 핀리 피터 던과 결혼하여 뉴욕에 정착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수십 년 동안 어머니가 올림픽의 역사를 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애보트의 업적이 완전히 인정받게 된 것은 플로리다 대학의 교수이자 올림픽 이사회의 멤버인 폴라 웰치가 올림픽의 미국 여성에 대해 쓴 박사 논문 덕분이었습니다.

웰치는 10년간의 조사 끝에 마가렛의 가족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아들인 필립 던은 1984년 _골프 다이제스트_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 우승을 거둔지 80년이 지나서야 어머니가 올림픽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 챔피언 본인은 그냥 파리에서 골프 대회 우승을 했었다는 이야기만 들려줬어요.”

에보트는 자신이 올림픽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알지 못한 채 195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대표팀 뿐만 아니라 올림픽의 꿈을 품고 있는 모든 여성과 소녀들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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