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보 누르미: 2시간 간격으로 2개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장거리의 전설
올림픽 역사는 수많은 챔피언과 신기록,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화,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존재하죠. 저희는 매주 과거의 올림픽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는: 두 시간 간격으로 두 개의 올림픽 기록을 세운 “플라잉 핀”, 파보 누르미의 이야기입니다.
배경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는 1924 파리 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역대 최고의 장거리 주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던 선수였습니다. 4년 전인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이미 누르미는 10,000m, 크로스컨트리, 단체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제프 기예모 다음으로 들어오며 은메달을 딴 5,000m 결선 역시 누르미가 올림픽 결선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진 유일한 경기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또한, 올림픽을 1년 앞둔 1923년 말, 누르미는 5,000m, 10,000m, 1마일 종목에서 세 개의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전례 없는 기록인 동시에 누르미 이후로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었습니다.
따라서, 파리 올림픽에서 누르미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결선
운명의 1924년, 누르미는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목표를 가지고 파리에 도착합니다.
올림픽 공식 역사에 기록된 인터뷰에서 누르미는 이런 설명을 남겼습니다. “6개월 전, 1,500m부터 10,000m까지 모든 올림픽 종목에 출전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핀란드 선수단의 단장은 팀의 스타 선수인 누르미의 체력이 고갈되거나 탈진하는 것을 걱정했고, 결국 10,000m는 출전 종목에서 빼도록 누르미를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10,000m가 빠졌다 하더라도 누르미는 1,500m, 5,000m, 크로스컨트리 개인전, 3,000m, 크로스컨트리 단체전의 다섯 종목에 출전 등록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르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대회 조직위였습니다. 1,500m와 5,000m 결선이 같은 날에, 그것도 두 시간도 안되는 간격을 두고 치러지도록 일정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7월 10일,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 누르미는 같은 날 두 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다는 사상 초유의 도전을 시작합니다. 먼저 열린 1,500m 결선, 첫 800m구간에서 누르미는 자신의 세계 기록보다 3초 더 빨리 달렸고 2위로 달리던 선수가 두 바퀴를 남기고 기권하며 수월한 승리와 함께 올림픽 기록을 3초 앞당기는 기록 경신도 해냈습니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누르미는 더 큰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1,500m 우승과 5,000m 결선 사이의 120분도 안되는 짧은 회복 시간에 더해 같은 핀란드 선수단 소속이자 3,000m 장애물과 10,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라이벌, 빌레 리톨라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누르미를 압도하기 위해 리톨라는 5,000m 초반을 세계 신기록 페이스로 달립니다. 하지만 누르미도 그 도전에 응했고, 결국 선두로 달리던 리톨라를 따라잡으며 다시 한 번 올림픽 신기록과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그 레이스는 관중석에서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정말 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더 가디언은 누르미의 승리를 “눈에 띄는 노력 없이” 이뤄냈다고 까지 묘사했죠.
그 이후
누르미의 역사적인 파리 1924 활약은 계속 이어집니다.
토요일에 열린 크로스컨트리에서 누르미는 42명의 경쟁자들과 무더위 속에서 레이스를 펼쳐야 했지만, 언덕이 많은 10,000m의 레이스를 완주한 선수는 단 12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코스 전역에서 실신한 채로 실려 나갔습니다. 프랑스 선수 중 한 명은 스타디움까지는 도착했지만 방향 감각을 잃은 채로 관중석으로 돌진했고, 그 과정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누르미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코스를 달렸고 2위와 90초 이상의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의 3,000m 단체전에서도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또 하나의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누르미는 마침내 10,000m 출전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고, 여기서도 금메달을 따냅니다. 그리고 4년 전, 자신이 참가할 수 없었던 파리 올림픽의 10,000m에서 리톨라가 세웠던 올림픽 신기록을 6초 이상 단축해버립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플라잉 핀”, 누르미의 마지막 영광이 되었습니다.
5,000m에서는 라이벌 리톨라에게 패하며 은메달, 3,000m 장애물에서도 역시 같은 핀란드의 토이보 로우콜라에게 뒤쳐지며 또다시 은메달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1928 올림픽 이후 누르미는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마라톤으로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전설을 다시 한 번 써내려갈 기회를 얻기도 전에 누르미는 스웨덴 올림픽 협회로부터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대회 출전을 금지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핀란드 장거리 전설의 잊을 수 없는 올림픽 여정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