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024 올림픽 역도: 박혜정 - "첫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과 동시에 한국 기록도 깨고 싶어요"
2023 세계역도선수권대회 3관왕, 용상·합계 한국 기록 보유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무수히 많은 주니어 대회 우승 이력까지, 장미란 이후 주춤해진 여자 역도계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박혜정이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과입니다.
박혜정은 현재 국제역도연맹(IWF) 여자 +81kg급 올림픽 출전 명단 2위에 올라가 있는데요, 올림픽 데뷔전에서 챔피언의 자리까지 넘보는 박혜정이 Olympics.com에 역도 인생과 역도의 매력을 들려주었습니다.
일반부 왕좌를 차지한 주니어 최강자
박혜정은 조금 늦은 나이일 수 있는 중학교 1학년 시절, '역도 여제' 장미란의 2008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보고 역도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장미란 차관님이 선수 시절,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장면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수소문 끝에 경기도에 있는 역도 명문학교인 안산 선부중학교로 전학을 가 역도를 시작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장미란은 한국 여자 역도 사상 처음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한국 역도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아테네 2004에서 은메달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출전한 모든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한 선수입니다.
자타공인 '장미란 키즈' 박혜정은 전국선수권대회와 전국체육대회 등 국내 무대에서부터 좋은 성적을 내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평양에서 열린 2019 아시아유스·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에서 합계 255kg을 들어 올려 장미란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운 기록인 235kg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후 2022년 그리스 이라클리오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합계 281kg으로 금메달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 합계 270kg로 금메달을 연이어 획득하며 세계 여자 역도 주니어 최강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2023년 9월, 성인이 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2023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24kg, 용상 165kg, 합계 289kg의 기록으로 금메달 3개를 획득하며 장미란도 현역시절 이루지 못했던 세계선수권대회 3관왕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이어서 10월, 중화인민공화국 항저우에서 펼쳐진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에서도 인상 125kg, 용상 169kg, 합계 294kg으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요.
박혜정이 성장을 거듭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항상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퇴근하고 끝까지 봉을 잡고 있어요. 운동을 조금 더 오래 그리고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성실함이나 꾸준함이 저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박혜정, Olympics.com)
타고난 재능과 부지런함, 그리고 성실함으로 무장한 박혜정은 이미 아시아와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첫 도전인 올림픽 메달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제 목표이자 국가대표로서 꼭 출전하고 싶은 시합이에요. 사실 지금은 올림픽 출전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데요. 너무 큰 대회라고 생각하면 경직될 것 같아서 항상 하던 국제 시합처럼 편하게 준비 중이에요."
어머니 영전에 바친 한국 기록, 그리고 올림픽 출전권
어머니께서 오래 아프셨으니까... 제가 '시합 가기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자주 했었어요. 그랬더니 대표팀 언니들이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올림픽 포기할래, 아니면 올림픽 나가는거 어머니께 보여 드릴래?'라고 저에게 반문했어요.
박혜정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2022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차근차근 파리 2024를 위한 올림픽 포인트를 쌓아왔습니다. 2023 및 2024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빠지지 않고 출전했으며, 특히 2023 세계역도선수권대회와 2024 국제역도연맹(IWF) 월드컵 대회는 필수 참여대회로 불참 시, 올림픽 출전 또한 불가능하기에 기량을 유지하며 몸관리에 신경썼습니다.
지난해 5월, 2023 진주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27kg, 용상 168kg을 들어 합계 295kg으로 한국 기준기록과 같은 무게를 들어 올린 박혜정은 올림픽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2024 IWF 월드컵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대회 1주일 전, 8년 동안 암 투병을 하신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은 박혜정은 상을 치른 후 훈련을 마무리하고 태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월드컵 출국 전, 박혜정은 "이제 마음 잘 추스르고 시합에 좀 더 집중해 보려고요. 3일 내내 어머니께 신경 많이 썼고, 여러분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면서 울고 웃고 했어요. 가족들도, 어머니도,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제 올림픽 무대를 기대하고 있으신데 최선을 다해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라고 의젓하게 말했습니다.
박혜정은 찜통 더위인 태국 푸켓 현지 날씨를 얼음찜질 등으로 이겨내며 고된 훈련을 참고 견뎠습니다. 그 결과 인상 130kg, 용상 166kg, 합계 296kg으로 한국 기준기록을 돌파해 새로운 한국 기록을 세우며 파리행 티켓을 확보했습니다.
여자 역도 무제한급 최강자로 불리는 중화인민공화국 리원원의 인상 145kg, 용상 180kg, 합계 325kg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사실... 전에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동료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어머니께서 오래 아프셨으니까... 제가 '시합 가기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자주 했었어요. 그랬더니 대표팀 언니들이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올림픽 포기할래, 아니면 올림픽 나가는거 어머니께 보여 드릴래?'라고 저에게 반문했어요."
"아버지랑 친언니도 그렇고, 어머니 또한 저의 올림픽 출전을 바라시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이번 월드컵에 가서는 정말 이 꽉 깨물고 제대로 보여주고 왔어요. 근데 어머니가 아직 제 꿈에 나오시진 않았어요. 아버지하고 언니한테는 다 나오셨다는데! (웃음)"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수많은 국제대회와 전국체전 등을 다 소화하며 몸도 마음도 지쳤을 박혜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가장 중요한 대회 목전에 겪고도 담담하고 의젓했습니다.
"솔직히 어머니 보내드리고 시합하러 태국에 갔을 때는 전혀 실감이 안 났어요. 전화하면 받으실 것 같고, 항상 계시던 자리에 계실 것 같았는데 시합이 끝나니까 생각이 많이 나요. 아직 완전히 슬픔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도 제가 시합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힘들어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거예요."
제가 올림픽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잘 아시니까... 참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상 치르고 대회 출전해서 시합에만 집중하고, 한국 가서 어머니 생각 많이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박혜정, Olympics.com)
현 세계 챔피언인 박혜정은 어린 나이지만 강한 멘털의 소유자로 유명합니다.
"대표팀 코치, 감독님이 저에게 '정말 힘든 일과 많은 걸림돌이 있었지만, 너가 다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많이 배운다'라는 말씀을 요즘 따라 자주 해주세요."
"제 성격은 '좋은 게 좋은 거다'의 표본 인 것 같아요. 저한테 안 좋은 것도 다른 사람들이 좋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때도 있어요. 싸우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는 평화주의자에요. 그런 성격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역도라는 운동이 인내심 기르는데 도움이 돼요. 계속 중량을 올려가며 개수를 많이 하면 정말 힘든데, 계속 참고 이겨내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인내심이 점점 길러져요."
생애 첫 올림픽: "목표는 메달·한국 기록"
무대 위에서는 한없이 강하고 무섭게 집중하는 박혜정이지만, 밖에서는 여느 또래 20대 아이들과 같이 궁금한 것 많은 소녀입니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처음 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하는데요.
"에펠탑을 꼭 보고 싶어요. 근데... 갈 수 있을까요? 루브르 박물관도 가고 싶고요. 유럽은 그리스에서 열렸던 세계주니어대회랑 얼마 전 다녀온 스페인 전지훈련 다음으로 세 번째인데, 사실 경기하러 가는 거라 다른 것은 눈에 안 보일 것 같아요."
박혜정은 '스포츠, 그리고 스포츠 그 이상'의 축제를 선사하게 될 이번 올림픽에 가족들도 초대했습니다.
"아버지하고 언니가 파리에 경기를 보러 오셔서 비행기 티켓하고 숙소까지 이미 예약을 다 했어요. 저보다 더 신나 보여요. 가족들한테도 첫 유럽 여행이거든요. 여행 경비는 다 제 돈이지만요. (웃음)"
꿈의 무대인 파리 2024를 상상하는 박혜정은 첫 올림픽이지만 당찬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메달권에 드는 것이 목표예요. 꼭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메달 자체가 노력해서 나온 성과라 생각해서요. 메달은 꼭 가져 오고 싶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인상, 용상, 합계에서 다 한국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시합 때는 좀 무덤덤한 편이라 메달 획득해도 별다른 생각은 안하는데 이번에는 시상대에 올라가면 가족들, 그리고 은사님이신 조성현 코치님(선부중학교)이 제일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코치님은 저에게 아낌없이 조언해주시고, 힘들 때마다 전화하면 도와주시는 분이라 의지가 많이 되거든요."
박혜정이 출전하는 파리 2024 대회 역도 여자 +81kg급 경기는 폐회식이 열리는 8월 11일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합니다.
역도의 매력: "정말 할 말이 많아요!"
박혜정이 생각하는 역도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역도는 1kg 차이로 순위가 정해지는데 서로 경쟁하면서 그 1kg씩 올려 들어가는 것이 짜릿해요. 같은 무게라도 먼저 드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 1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기 싸움도 하고 눈치 싸움도 하고, 한쪽에서는 재판정 요구하는 챌린지 카드 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먼저 들어갈 타이밍 보고 하는게 너무 재미있어요."
과거 역도 경기 규정에서는 같은 무게를 들었을 경우, 몸무게가 더 적게 나가는 선수가 앞순위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해당 규정이 과도한 체중조절과 소극적인 기록도전이라는 현상을 낳아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IWF는 2017년 부터 '체중 싸움'을 없앴습니다. 현재는 체중에 관계 없이 같은 무게를 든다면 시기를 먼저 들어간 선수가, 그리고 1kg이라도 더 많이 든 선수가 승자가 됩니다.
"사실 애초에 사람이 이렇게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종목들도 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거지만, 역도는 제일 직관적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종목이지 않을까요? 중력에 맞서 싸우는!"
역도선수 박혜정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역도가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역도에서도 빛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혜정, Olympics.com)
"저는 이번이 인생 첫 올림픽 출전인데 많이 응원해주세요! 전현무 아나운서님께서 중계방송을 직접 해주신다고 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실 수 있다고 하시니, 더 힘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확실히, 제대로 보여주고 올게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함과 책임감을 갖고 시합에 임할 예정이에요. 응원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