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이웃들
육상 국가대표 선수가 전력질주로 집앞을 달려가는 일은 직접 보더라도 잘 믿기지 않는 장면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경험은 영국 대표팀의 육상 선수, 제시 나이트의 이웃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일상이 되었죠. 제시 나이트는 락다운 상황에서의 훈련이란 현실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나이트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코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냥 계획대로 하자.’ 그래서 훈련 세션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어요.”
“그냥 측륜을 하나 사서 동네 주변의 거리를 다 쟀습니다. 그 결과로 이웃들은 제가 집 앞 도로를 따라 300m 전력질주를 하는 아주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죠.”
2020년에 측정된 육상 400m의 전체 기록 중에서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을 냈던 나이트는 - 주종목은 400m 허들이지만 - 영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격리 생활에 적응해 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에 이은 적응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많은 선수들이 크게 실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 선수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도 그것 뿐입니다. 긍정적인 자세. 그리고 목표는 당연히 내년입니다.”
만약에...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락다운 조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약에’라는 아쉬움을 심어줬습니다. 제시 나이트에게는 특히 가슴 아픈 일이었죠. 도쿄 2020을 향해 인생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내 대회에서 엄청난 발전을 만들어냈습니다. 따라서 올림픽이 열리는 해와 생에 최고의 컨디션이 만들어지는 타이밍이 멋지게 들어맞게 되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냥 사라져버렸습니다.”
“몸 상태가 정말 좋았습니다. 월드 클래스 수준의 기록을 낼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갔어요. 하지만 뛸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나이트의 ‘만약에’가 컨디션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나이트는 2월 글래스고 그랑프리 400m에서 51초 57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죠.
알다시피, 제시 나이트 본인도 400m가 주종목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락다운 때문에 주 종목인 허들은 올해 들어 아직 대회 출전조차 없는 상황이죠.
“제 생각에 저의 주 종목은 400m 허들입니다.”
“지금의 몸 상태로 대회에서 400m 허들 기록을 재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일반 400m 달리기에서 좋은 기록을 냈지만, 정작 허들 경기는 뛰지 못했어요.”
락다운이 주는 장점?
영국의 이동제한 조치로 인해 마주하게 된 새로운 현실은 나이트의 육상 훈련 뿐만 아니라, 6학년 담임 교사로서의 일정도 바꿔놓았습니다.
하지만 전부 나쁘게만 바뀐 것은 아니었죠.
3년 전, 나이트는 육상을 완전히 포기했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초보 교사에게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요.
하지만 락다운으로 인해 교사들이 모두 자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일과 훈련을 함께 해 나가는 일은 사실상 좀 더 쉬워졌습니다.
“더 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일하니까요. 일반적으로 9시부터 4시까지. 그리고 나서는 트랙이나 공원으로 바로 가서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훈련은 6시 30분이나 7시경에 마무리되죠. 예전처럼 밤 9시가 아니라. 따라서 하루가 좀 짧아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혼자 하는 훈련으로 집중하기도 좀 더 편해졌습니다.
“혼자 훈련하고 말할 상대가 없으면 훈련이 좀 더 빨리 끝나게 됩니다. 다같이 훈련할 때는 가끔 워밍업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릴 때가 있어요. 워밍업 하는 동안 동료들과 잡담을 하기 때문에요.
“하지만 지금은 운동하러 가서 혼자 운동만 하고, 운동을 마치면 바로 집에 옵니다. 좀 더 수월해졌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다 쏟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저는 풀타임 선수들과 경쟁하니까요.
도쿄 올림픽을 향한 계획
지금 나이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질문은 '내년 도쿄 올림픽까지 훈련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입니다. 모든 시간을 스포츠에만 쏟을 수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과 같은 레벨에서 경쟁하기 위해서요.
조만간 답을 찾아야만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도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떠날 생각은 없어요. 교사이자 육상 선수라는 직업은 저한테 잘 맞으니까.”
“하지만 풀타임 말고 출근을 3일로 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서요.”
“학교는 모든 방면에서 저를 아주 많이 지원해 줍니다. 교장선생님과 면담도 많이 해요. 학교측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지원해 주겠다는 말을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몇 주 안에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풀타임 육상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교사를 그만두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풀타임 직업을 가지고 올림픽 출전을 위한 힘든 훈련까지 소화해 내는 일은 운동 선수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들고, 나아가 심각한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리치료사를 찾아가거나 마사지를 받을 수조차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몸에 불편한 느낌이 자꾸 들거나 하면 훈련 세션 전체를 쉬고 물리치료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정말로 시간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정말 신경쓰이는 부상이 아니면 그냥 아무 치료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전환한다면 이틀이 더 생기게 되죠. 치료도 자주 받을 수도 있고 잠도 더 자고 회복도 더 잘하며 몸 관리를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상당히 무리하고 있으니까요.”
타고난 선생님
6학년 자기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제시 나이트는 육상 선수가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님의 모습이 됩니다.
육상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해야 할 훈련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들의 운동은 재미가 주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죠.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레이스에서 개인 최고기록들을 세우던 시절이 기억나요. 그냥 나가면 개인 최고기록을 세워버립니다. 부담이 없으니까요. 그냥 가서 즐기면 됩니다. 네, 재미를 느끼고 즐겨야 해요.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주 사회적인 활동이 되는 거죠.”
이것은 나이트가 자기 반을 가르칠 때 기반이 되는 철학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동기 부여가 되고 체육 수업은 아주 즐거워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 역시 확실합니다.
“솔직히 아이들은 정말 놀랍습니다. 다들 제가 세계 최고의 육상 선수인 줄 알아요.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는거죠.”
“손가락을 튕겨서 우리 반 32명이 다 교실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현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훈련에 대해 나이트도 모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보죠.
“그 전에 정말 많은 일들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반드시 한 그룹으로 훈련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가능하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제 혼자 하는 훈련에 적응했습니다. 저도 그래요. 처음에는 좀 벅찼지만, 하다보면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스톱워치로 스스로 기록을 재는 것도 괜찮습니다. 솔직히 모두가 함께 훈련할 수 있을 날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려 봐야죠.”
도쿄를 향해
지금으로서는 도쿄 올림픽에서 400m 허들에 더해 일반 400m에서도 뛸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합니다. 이것도 육상과 '현실'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을 때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죠.
지금은 그 '현실'이 더 비현실적이 되었지만, 도쿄를 향한 제시 나이트의 꿈은 여전히 밝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