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예 위원장 자크 로게 박사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크 로제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8대 위원장이었습니다.
벨기에인인 자크 로게 박사는 스포츠 의학 학위를 가진 정형외과 의사였습니다.
뛰어난 스포츠맨인 로게는 벨기에 국가대표로 핀급 요트에서 세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또한 1976년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벨기에 럭비 국가대표로 10번이나 선발된 바 있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그는 벨기에 올림픽 위원회와 유럽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IOC 위원장 재임 후에는 유엔 청소년, 난민 및 스포츠 특별 사절로 활동했습니다.
자크 로게 전 위원장은 임기 동안 솔트레이크 시티 2002, 아테네 2004, 토리노 2006, 베이징 2008, 밴쿠버 2010, 런던 2012를 치러냈습니다.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는 로게의 삶을 돌아보며 "우선, 자크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선수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열정을 전달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IOC를 현대화하고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 뛰어난 위원장입니다. 특히 그는 청소년에게 스포츠 챔피언의 지위를 만들어주고, 유스 올림픽을 창설한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클린 스포츠의 맹주이기도 했고 도핑의 폐해에 맞서 지칠 줄 모르고 싸웠습니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우리는 함께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멋진 우정을 공유했고, 그의 마지막 날까지 이러한 우정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때 올림픽 운동 전체가 저와 함께 그의 공헌, 특히 올림픽 문화 및 유산 재단의 공헌으로부터 여전히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운동 전체가 위대한 친구와 열렬한 스포츠 팬의 죽음을 깊이 애도할 것입니다."
자크 로게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올림픽기는 올림픽 하우스, 올림픽 박물관, 모든 IOC 시설에서 5일간 조기로 게양될 것입니다.
자크 로게의 경력
겐트에서 태어난 자크 로게는 자랑스러운 정형외과 의사였으며, 의사로서 배운 기술 중 일부를 스포츠 행정가로 일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로게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수술로 인해 삶의 불확실성, 모든 야망의 허약성에 대해 절실하게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권력을 가진 그의 위치에 있는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특이한 점은 완전히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 올림픽 챔피언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크 로게를 일컬어
반-도핑
로게는 1980년대 벨기에 올림픽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89년부터 벨기에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직에 올랐습니다.
그는 IOC 위원장 시절 반-도핑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도핑과의 싸움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저는 항상 도핑이 스포츠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정행위를 시도하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엄격하게 도핑을 통제하고 있습니다"라고 자크 로게는 말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운동의 발전
자크 로게는 1989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도중, 1998년에 IOC 집행위원회에 합류했습니다.
2001년에는 주앙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후임으로 IOC 위원장에 선출되었습니다.
자크 로게가 재임 기간 중 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유스 올림픽은 2010년 싱가포르에서 초대 대회가 열렸습니다.
유스 올림픽의 목표는 전세계 최고의 젊은 선수들을 모아, 그들에게 올림픽정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선수들은 미래의 스타이고, 우리는 이들에게 최고의 수준에서 경쟁할 기회를 주는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 도핑과의 싸움, 부상방지 등 운동 선수로서 발전하는 데 알아야 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혜택을 주고자 했습니다"라고 자크 로게가 말했습니다.
IOC 위원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났을 때, BBC에게 그의 유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제가 취임했을 때보다 IOC가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