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디 앨리슨: 활과 과녁, 그 사이의 광활한 공간 

세계적인 양궁 슈퍼스타 브래디 앨리슨은 완전히 미국 오리지널입니다. 그는 도쿄 2020과의 단독 인터뷰에 참석하여 자신의 올림픽 문신과 경력을 끝낼 뻔한 부상 사례, 그리고 일생의 사랑인 경쟁 무대와 야생에서의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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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Getty Images)

통증은 가운뎃손가락 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래디 앨리슨은 바로 오른팔을 펴서 50파운드 정도 되는 그의 활을 당겨 팽팽하게 만들었습니다. “발사했을 때는 번개처럼 느껴졌어요.” 32세의 미국 국가대표 양궁선수는 신화처럼 넓은 공간이 펼쳐진 미국 서부 애리조나 주 글로브에 위치한 자신의 시골집에서 도쿄 2020에게 말했습니다.

통증은 그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단체 은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딴 직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고통은 2017년 내내 지속되었고 2018년에는 더 심해졌습니다. “의사들은 저에게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앨리슨은 MRI를 비롯한 다양한 검사와 전문가들을 거친 후의 심경을 전했습니다.

“양궁을 그만두거나 그저 수준 이하일 것입니다.”

앨리슨이 수준 이하라는 말은 앨리슨이나 다른 누구의 주위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스터리한 부상의 고통 속에서 그는 하루에 쏘는 연습 화살의 수를 반으로 줄였지만, 세계 7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고, 그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원하는 만큼 쏘거나 훈련하지 않았습니다.” 앨리슨은 고통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기술을 연마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 은퇴를 고려하며

똑바로 쏘겠다는 앨리슨의 약속은 절대적입니다.

(2019 Getty Images)

그는 물리학과 일반적인 현실이 허용하는 한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갈망합니다. 절반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양궁 선수가 스포츠를 그만두고 애리조나 중부 피날 산맥 근처 자신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한 구리 광산의 깊숙한 곳으로 향한 이유입니다. “저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입니다.”

앨리슨은 가족을 통해서 힘을 얻습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의 양궁 대회가 취소되어 의존했던 상금을 고려할 수 없었던 힘든 시기에 아들 타이 쿠퍼 앨리슨을 세상에 맞이했습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 10위권 컴파운드 양궁 선수이자 결혼한 지 5년 된 그의 아내 토자는 의사들을 당황하게 하고, 남편의 경력을 위협하는 부상을 치료할 특이한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토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생체 에너지 학자를 만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가 의존했던 상식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은 그에게서 차츰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른손에 문제가 있고 아킬레스도 무언가 잘 못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고, 그는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저는 그 남자를 보면서 그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그래 그럼 고쳐봐’라는 태도였어요.”

“이건 미친 소리로 들릴 거예요.” 심각했던 갑상선 질환과 어린 시절 1년 이상 다리 교정기를 착용하게 한 페르테스 병치레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었던 앨리슨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자연적인 치료사)는 내게 손을 얹고 그의 신체 에너지로 저를 치료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 고통도 없었습니다.”

뿌리가 깊게 파인 무더기의 꼭대기

이 사람은 견고한 원칙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가 만질 수 있는 물건. 그가 명중시킬 수 있는 표적. 하지만 결과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실험 치료 3일 후, 그는 지난 3년보다 하루에 더 많은 화살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2019년, 그는 런던 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한 다음 해인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을 획득하고 세계 1위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환경의 산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알프레드가 운영하는 앨리슨 가족 농장의 길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뿌리는 미국의 광활한 서부 야생에서 8대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역의 미덕인 겸손과 자급은 앨리슨 안에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애리조나 카우보이’ 혹은 ‘탐사자’ 같은 별명이 처음에 그에게 붙은 이유입니다.

(2016 Getty Images)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랄프 로렌 디자이너가 미국 팀에 준 복장보다 낡은 카우보이모자가 더 편안한 거칠고 준비된 10대였습니다.

종종 수염을 길렀던 그는, 2016년 리우 대회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2015년 영화 레버넌트의 개척자와 비교되는 바이럴 밈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리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입니다.” 앨리슨은 고립된 양궁 세계에서 벗어난 자신의 갑작스러운 명성에 대해 웃었습니다. “유일한 유사점은 우리 모두 끔찍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양궁 사랑은 평생 이어졌어요.” 브래디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6살 때, 첫 활을 사주었습니다. 그 몇 년 전에는 장난감 버전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양궁은 그의 영원한 열정이었습니다.”

과학과 본질 – 앨리슨 방법

앨리슨은 과학적이고 구조화된 기술과 방법론에서 가장 뛰어난 최신 기술을 갖춘 캘리포니아 출라비스타의 미국 대표팀 첨단 기술 교육 허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활을 사용하여 집 근처 산과 개울에서 사냥과 낚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앨리슨이 경쟁에서 선택한 무기가 리커브 활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컴파운드보다 더 단순한 리커브는 인간이 수만 년 동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원시 무기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여기서(혹은 집에서) 먹는 모든 고기는 사냥이나 사육에서 옵니다.” 11살에 첫 곰을 죽였던 앨리슨이 말했습니다. “저희는 가게에서 고기를 사지 않습니다. 오직 야채와 연어만 삽니다. 저희 부부는 연어를 좋아하지만, 저는 최고의 어부가 아니고, 애리조나에는 연어가 많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은 그저 특별합니다...
궁국의 스포츠 대회에요

농부와 목장주 사이에서 자라며 가진 이 자급 (두 잇 유어 셀프) 정신은 앨리슨이 스포츠 계의 많은 부분을 마비시킨 코로나19 대유행의 도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특이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작업장에 나무 바닥을 깔고 시간을 들여 거칠게 다듬어진 훈련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업은 엘리슨 가족 농장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도움의 손길을 빌려주는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여기에 (6 에이커 부지) 실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단지 두 개의 헛간으로 합쳐졌을 뿐이지만, 실내 공간으로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설정했습니다.”  

돼지를 기르고 울타리를 손질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은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하루에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갑니다. 

어린 시절부터 앨리슨을 사로잡은 것은 똑바로 날아가는 화살과 그들이 갈망하는 과녁입니다. 그는 양궁에 대한 처음의 집착에 대해 “활은 연습을 많이 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나 농구는 더 많이 해도 그저 똑같았습니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평균이었지만, 양궁에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자라났습니다”고 말했습니다.

(2016 Getty Images)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과 함께 사냥과 낚시를 하며 자라면서 앨리슨의 활 솜씨는 보기 드문 편안함과 정확성을 가지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경쟁은 이어졌습니다. 16살이 되자, 그는 다른 젊은 유망주들과 함께 출라비스타에 살았습니다. 그는 함께 사는 아파트 벽에 사슴 머리와 코르시카 (긴 뿔) 양 머리를 자랑스럽게 달았습니다.

올림픽은 앨리슨에게 중요합니다. 올림픽은 현실이 되자마자 그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양궁을 하기 위해 남은 2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그의 오른쪽 팔뚝에 있는 (그가 활을 당길 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노출된) 세 개의 문신은 올림픽에 대한 그의 꿈과 야망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앨리슨의 4번째 올림픽

“올림픽은 특별할 따름입니다”라고 3번의 올림픽(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에서 3개의 메달을 따고 4번째 출전과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는 앨리슨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궁극의 스포츠 행사입니다.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항상 특별합니다. 일단 올림픽에 나가게 되면 다른 경기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2028년 LA 대회까지는 출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앨리슨은 2021년 4월 말 과테말라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이루어진 메이저 대회 복귀를 가장 달가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전 1라운드를 지배한 후, 2라운드에서 네덜란드의 젊은 선수인 기스 브록스마에게 졌고, 이후 탈락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났는데, 누구도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앨리슨은 전염병으로 인한 국제 경쟁의 큰 격차에 대해 말했습니다. “몸을 다시 작동시키기 위한 작업에 녹이 너무 많이 발견되기보다는 단순히 먼지를 털어내는 정도에 그쳤으면 합니다.”

앨리슨은 가끔 길에서 부딪히는 것에 익숙해져서 실수로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 당신은 분야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탁월함에 대한 헌신이 공통으로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50m 또는 70m 거리에서 과녁을 맞추는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앨리슨은 “그것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장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화살이 공중에 떠오르면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날에, 화살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고 있다면, 그 날들은 정말 즐겁습니다.”

“평범한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거에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화살을 쏘았는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남자는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7자리에 달할 것입니다.

“특별한 것은 모든 것이 정렬되고 한 곳에 모이는 순간입니다.” 앨리슨은 사냥이나 목표 범위를 벗어가거나 많은 도전 중에서 하나를 극복하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것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을 때는 꿈 같은 느낌이 듭니다.”

(2019 World Archery Fed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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