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올림픽 마라톤에서 달려야 하는 42.195km는 인간이 가진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1968년 올림픽이 열렸던 멕시코시티는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로 장거리 달리기에는 아주 불리한 조건이었죠. 게다가 레이스 중간에 넘어져서 다치기까지 했다면?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쿠와리는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겪었습니다. 멕시코 올림픽 당시 아프리카 챔피언이던 아쿠와리는 평균 기록 2시간 15분으로 메달권 진입 확률이 높았던 선수였지만, 실제 경주에서는 메달이나 시상대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극적인 레이스
코스의 절반 정도를 달린 시점에서 아쿠와리는 넘어지며 머리와 어깨, 무릎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결승선까지 아직 20km 이상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로 레이스를 포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아쿠와리는 계속 달렸습니다.
해발 고도 2,000m 이상의 고지대를 달리는 마라톤이었기에,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참가자 75인 중 18명이 완주에 실패했습니다. 아쿠와리 역시 고지대로 인한 산소 결핍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무릎에 붕대를 감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달려 나가던 아쿠와리에게도 더 이상 뛸 수 없는 한계가 찾아왔습니다. 아쿠와리는 결국 금메달을 차지한 에티오피아의 마모 월데가 결승선을 통과한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리를 절며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설 수 있었죠.
아쿠와리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는 마라톤 시상식이 모두 끝났고 관중들도 대부분 경기장을 떠난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남아 있던 관중들은 트랙으로 들어선 아쿠와리에게 온 힘을 다한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관중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는지 아쿠와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한 무릎 부상을 안고도 마지막 수백미터는 달렸고, 영웅처럼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투지의 근원
3시간 25분 27초라는 시간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맨 마지막에 들어왔지만 아쿠와리는 의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리겠다는 의지가 어디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아쿠와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저를 5,000마일 떨어진 이곳까지 보내준 것은 출발선에 서라는 것이 아닌, 완주를 하고, 결승선을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해준 이야기도 덧붙였죠. “만약 뭔가를 시작한다면 끝을 내라. 그게 아니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고.”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와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아쿠와리는 실제로 부모님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최종 순위나 시간 기록이 어땠는지는 상관 없었습니다. 아쿠와리는 올림픽 마라톤의 결승선을 통과했으니까요.
꼴찌의 명성
아쿠와리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가장 유명해진 선수 중 한 명이 되었고, 반 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도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후 올림픽 메달을 따낸 적은 없지만 아쿠와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마라톤 시상식의 메달 수여자로 초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