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체조 여서정 인터뷰: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두 번째 올림픽,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요"
'기계체조 메달리스트 여홍철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체조선수 부모님을 둔 어린 소녀를 TV 예능에서 보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졌던 것이 과연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여서정은 세계 무대로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어쩌면 그 무거운 부모님의 갑옷을 벗는 것이 어린 소녀에게는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도마 종목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더니 3년 후,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같은 종목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이것은 여서정 개인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한국 여자 기계체조 최초, 최고의 기록으로 남은 역사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서정 이름 앞 수식어는 바뀌었죠, '한국 최초' 혹은 '도마 천재' 여서정으로.
"아무래도 올림픽 메달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거머쥔 말간 얼굴의 그가 Olympics.com과의 인터뷰를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자랑할 만한 건 없지만, 그래도 자세 같은 건 제가 좀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장점에 대한 질문에 눈을 내리깔며 새초롬히 부끄러워하는 여서정과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그가 이제 불과 만 스물 한 살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대부분의 또래들이라면 여전히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계획하거나 준비할 나이. 그러나 남들이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거치는 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롯이 자신의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체육관에서 달리고 점프하고 넘어졌던 그의 눈에는 앳된 얼굴이나 떨리는 목소리와 다른 어떤 결기와 강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두 번째 올림픽, 왕관 아니 메달의 무게를 견뎌라
더 이상의 최선이 있을까 싶게 날아올랐던 지난 도쿄 올림픽,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이라는 왕관의 무게감은 분명 이후의 도전을 주저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는 허리 통증으로 도쿄 올림픽이 끝난 후 근 반년 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고,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듬해 2022년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결선 8명 중 7위라는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자신의 기술 '여서정'은 선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서정은 작년 2023 세계 기계체조 선수권에서 도마 종목 동메달을 거머쥐었고, 또 한번의 '한국 최초 여자 기계체조 세계선수권 메달' 이라는 역사를 써내며 기계체조 월드스타로 불리는 헤베카 안드라지와 시몬 바일스 옆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제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여러번 참가했고 모두 결선까지 올랐지만 메달이라는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해 안타까웠어요. 작년 이를 이루고 난 후, 정말 내가 뭔가 해냈다, 큰 성과를 이루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좋은 성적을 가져올수록, 파리 2024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은 커지고 이는 더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올림픽에서 이미 메달을 땄으니까, 제게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든 마주해서 이겨내려고 노력해요. 평소처럼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 큰 답은 없는 것 같지만요."
아버지이자 애틀랜타 1996 은메달리스트인 여홍철 선수는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달성한 레전드로 이에 대한 조언을 해줄 법도 할 것 같았지만, 그는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습니다. "아직은, 딱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여홍철 선수 역시 여타 인터뷰에서 '딸에게 기술이야기는 잘 안한다. 쉴 곳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인 엄마 김채은(개명전 김윤지) 선수와는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채은 선수는 심판으로도 선수촌 코치로도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자리를 내려놓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엄마랑 대화를 많이 해요. 고민거리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는 편인데요. 그렇지만 올림픽에 대해서는 부모님이랑 크게 얘기를 해보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냥 자는 편인 것 같아요."
올림픽 여자 단체전 진출, 그리고 주장으로서의 역할
비록 두 번째 올림픽이기는 하지만, 2024 파리 올림픽 대회는 여서정에게 여러모로 새로운 대회가 될 것입니다. 일단, 이번에는 36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 단체전 출전권을 획득했고 대표팀 주장이라는 완장도 차게 됐습니다. 여서정 선수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보다도 동료들과의 이 도전에 대해 훨씬 더 신나게 말을 이었습니다. 이제 그 곁엔 함께 고락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다들 저랑 크게 나이 차이가 많지 않고 오랫동안 서로를 잘 알아왔잖아요. 제가 조언이라고 해 줄 것이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평소에 저희는 경기나 연습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들이나 농담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단체전 경기는 모든 종목을 다 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기계체조의 경우 단체전이라고 하지만, 결국 혼자 나가서 자신만의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개인전의 연장이다라고 생각하거든요.결국 개인이 잘 해야 단체가 잘 되는 거니까, 일단 제가 할 것을 잘 하면 되지 않을까요(웃음)."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대표팀 주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관한 고민을 잊지 않습니다. "모두들 분명 힘들고 지칠 때가 있어요. 결국 이럴 때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그 정신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서포트 하는 것이 주장의 역할인 것 같아요."
두 번째 올림픽, 성장의 정석 여서정
실제로 여서정이 경험한 첫번째 올림픽은 그간 열려왔던 어떤 대회와도 달랐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관중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없었고, 지켜야할 규율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마음 한 편으로 두 번째 올림픽이 기대되기도 한다고 스물 하나의 청춘답게 눈을 반짝였습니다.
"저는 파리에 딱 한 번 가봤어요. 길 위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바게뜨를 들고 있는 것도 기억에 남고, 에펠탑도 가보긴 했는데 제대로 기억이 안나서. 기회가 된다면 동료들이랑 같이 가보고 싶기도 해요."
이렇게 담담하게 앞으로의 대회를 얘기하는 여서정은 어쩐지 보다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타고난 자신감일까요? "저 진짜 엄청나게 많이 떨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떨거든요. 그런데 그런게 얼굴에는 티가 잘 안나는 모양이에요. 그저,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고, 정말 너무 긴장되어 힘들면,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는 것 같아요(웃음)."
사실 그에게 2022년은 참 힘든 한 해 였습니다. 허리부상으로 쉰 이후, 그 체력과 기술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까지 오랫동안 슬럼프의 시간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커리어를 포기할 뻔한 그를 잡아준 건,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아온 세계선수권대회였습니다. 그 기록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파리올림픽이라는 목표를 재설정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변에 동료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서로 다독이고 독려하는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성인이 되고 실업팀에 합류하면서, 학생 때와 달리 스스로를 책임지고 컨트롤 하는 능력과 책임감이 생겼다는 점도 인간 여서정, 그리고 선수 여서정을 한 뼘 더 키워주었습니다.
고작 몇 초, 그 찰나의 순간 뛰어올라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야 하는 도마. 그 어떤 다른 종목보다 훨씬 높고 무거운 긴장감이 152센티미터의 그를 내리 누르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짜릿한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여서정은 파리 올림픽을 향한 목표를 당당하게 말해봅니다.
"목표는 언제나 크게 잡으라고 있는 거죠. 될 수 있는 대로 힘껏 다 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