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파라과이는 멕시코 1968을 통해 올림픽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비로소 메달을 품에 안게 된 대회는 2004 아테네 올림픽이었습니다. 파라과이를 대표해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총 23명으로, 27명이 참가했던 바르셀로나 1992에 이어 파라과이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올림픽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라과이에게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메달을 안긴 종목은 개인이 아닌, 수많은 선수들이 함께해야 하는 단체 스포츠였습니다. 바로 축구였죠.
아테네 2004 당시 파라과이는 결승전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4승을 거둔 한편 패배는 단 한 차례만을 기록했습니다.
조별리그에서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 ‘알비로하(La Albirroja)’는 일본과 이탈리아에게 승리를 거두었지만(일본전 4-3, 이탈리아전 1-0) 가나에게 패배했던 것입니다(1-2).
하지만 가나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는 8강 진출에 성공했고, 8강전에서 대한민국을 꺾으면서(3-2) 준결승전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준결승에 오름으로써 파라과이는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
준결승전에서 파라과이는 결승행 티켓을 두고 이라크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면서 파라과이의 올림픽 역사가 새로 쓰였죠.
이것으로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은 그때까지 파라과이의 그 어떤 선수도 해내지 못했던 일, 올림픽 메달을 확정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메달이 어떤 색인지가 결정나는 결승전 뿐이었죠.
파라과이가 결승전에서 마주하게 된 상대는 당시 올림픽 출전국 중 가장 강력한 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던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스쿼드 그대로 올림픽에 참가했고, 여기에는 로베르토 파비안 아얄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하비에르 사비올라, 카를로스 테베스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르셀로 비엘사라는 전설적인 감독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있었죠.
‘언더독’ 파라과이가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버거운 상대였을까요?
아르헨티나가 끊임없이 맹공을 퍼붓는 가운데 파라과이 대표팀도 투지 넘치는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에는 아르헨티나의 테베스가 득점을 기록하면서 금메달을 향한 파라과이의 꿈도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아르헨티나에게 무릎을 꿇고 금메달을 놓쳤지만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이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은메달은 파라과이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으니까요.
기념비적 성과
디에고 바레토, 로드리고 로메로, 에밀리오 마르티네스, 훌리오 만수르, 카를로스 가마라, 호세 데바카, 셀소 에스키벨, 페드로 베니테스, 에르네스토 크리스탈도, 에드가르 바레토, 디에고 피게레도, 아우렐리아노 토레스, 훌리오 세사르 엔시소, 오스발도 디아스, 파블로 히메네스, 프레디 바레이로, 훌리오 곤살레스 페레이라, 마지막으로 호세 카르도소.
파라과이 역대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만들어낸 축구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은 파라과이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고, 대표팀이 귀국했을 때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축구 대표팀이 이뤄낸 은메달은 아직까지도 파라과이의 모두가 기억합니다. 은메달을 따낸 후 15년이 흐른 작년에도 파라과이 언론에서는 결승전이 열렸던 날을 기념해 대표팀 영웅들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을 내보냈고, 2004 아테네 올림픽의 축구 대표팀 선수들도 그날의 영광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카를로스 가마라는 “파라과이가 다시 메달을 딸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고, 프레디 바레이로는 “굉장한 팀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높았고, 꿈도 커졌으며. 결국 파라과이 축구를 위해 멋진 결과를 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파라과이는 이제 도쿄 2020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또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