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지금은 조니 와이즈뮬러가 타잔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타잔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함 소리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 즉 스크린 데뷔 전의 와이즈뮬러는 수영 선수였습니다.
그것도 엘리트 수영 선수이자 동시대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1922년 7월 9일에 100m 자유형 역대 최초로 1분의 벽을 깨뜨렸던 선수가 바로 조니 와이즈뮬러였고, 그는 1924 파리 올림픽 이전부터 이미 수영계의 스타였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와이즈뮬러는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했습니다. 특히 100m 종목에서요.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올림픽 2연패를 기록 중인 미국의 듀크 카하나모쿠를 꺾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100m 자유형 결승. 출발 신호와 함께 와이즈뮬러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사용된 50m 길이의 수영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물 밖에 내놓는 자신만의 특이한 크롤 영법으로 코스를 59초만에 주파하며 올림픽 신기록과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와이즈뮬러 뒤에는 1분 1초 4의 기록으로 카하나모쿠가 2위, 그리고 그의 형제인 사무엘 카하나모쿠가 1분 1초 8로 3위에 올랐습니다.
_'워터맨: 듀크 카하나모쿠의 삶과 시간'_의 저자인 데이빗 데이비스는 이 100m 경주가 수영을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았다고 설명합니다.
“조니 와이즈뮬러와 듀크 카하나모쿠가 1924 파리 올림픽에서 맞붙으며 1920년대 수영은 엄청난 스포츠로 발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세계 최정상에 올라가 있는 두 명의 선수였어요.”
그 이후
1924 파리 올림픽에서 와이즈뮬러는 100m 자유형 금메달 뿐만 아니라 400m 자유형과 4x200m 계영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따냈고, 미국 수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까지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계 진출 전이었지만, 와이즈뮬러는 그 당시에 이미 올림픽을 영화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와이즈뮬러의 손녀, 리사 마리아 샐브에 따르면 “대회 시작과 함께 조니와 스터비 크루거(수영 및 다이빙 선수) 두 사람은 수영 종목 경기 사이 사이에 관중들을 위한 코미디 다이빙 루틴을 선보였습니다. 대회 기간 내내 그랬어요. 그 공연으로 두 사람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와이즈뮬러는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도 출전해 100m 자유형과 4x200m 계영 종목 올림픽 2연패를 이뤄냅니다.
와이즈뮬러의 100m 자유형 세계 기록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거의 10년동안 깨지지 않았고, 그 기록이 깨졌을 때는 와이즈뮬러가 이미 첫 타잔 영화 – 1932년작 유원인 타잔 - 에 출연한 뒤였습니다. 영화의 원래 각본에는 수영이 들어 있지 않았지만, 와이즈뮬러의 합류와 함께 수영은 타잔 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첫 타잔 영화로 헐리웃을 경험한 와이즈뮬러는 총 12편의 타잔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또 하나의 신기록이죠.
이후 타잔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와이즈뮬러는 또다른 영화 시리즈, '정글 짐'의 주연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