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페드로 파블로 데 비나테아, 장애인 배드민턴의 선구자

2020년, 페루의 코로나바이러스 락다운 상황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팬 아메리칸 3회 챔피언, 데 비나테아. (Photo by Raul Sifuentes/Getty Images)
2020년, 페루의 코로나바이러스 락다운 상황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팬 아메리칸 3회 챔피언, 데 비나테아. (Photo by Raul Sifuentes/Getty Images)

장애인 배드민턴의 파라팬 아메리칸 챔피언, 페드로 파블로 데 비나테아는 도쿄 2020 출전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페드로 파블로 데 비나테아는 가장 힘든 순간에도 언제나 낙관적이었습니다. 암치료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암을 극복해냈고, 리마 2019 파라팬 아메리칸 게임 금메달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도, 그리고 지금 도쿄 2020 출전에 대한 꿈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낙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패럴림픽 출전을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데 비나테아는 패럴림픽이 열리는 올해 9월로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이미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상황은 조금 특별합니다. 랭킹은 좋아요. 하지만 패럴림픽 출전을 확정하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특별 초청도 있고, 출전할 대회도 남아있어요. 그러나,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도 있지만 따내지 못할 가능성도 똑같이 존재합니다.”

데 비나테아가 스위스 바젤에서 열렸던 2019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더라면 패럴림픽 출전을 위한 랭킹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데 비나테아는 도쿄 2020 출전 포인트가 걸려 있지 않지만 그 어떤 대회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준 리마 2019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데 비나테아는 남자 단식 SL3 파라 팬아메리칸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내 조국, 페루를 위해 뛰는 것을 택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결정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맨으로서 저의 꿈은 리마 2019 금메달 획득이었습니다. 그 목표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직업과 개인에 관련된 모든 결정들을 미뤘어요. 세계 선수권에서 딴 메달이 하나 있긴 했지만, 리마는 정말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일찌감치 찾은 열정

데 비나테아는 아홉 살 때 배드민턴을 시작했습니다.

“쉬지 않고 배드민턴만 쳤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팀에 들어갔고, 페루를 위해 메달을 따기 시작했어요. 남미의 13세 이하, 15세 이하 대회들에 나가서 금메달 다섯 개를 따냈습니다. 그리고 U15 팬아메리칸에서 은메달도 하나 추가했고 아주 어린 나이로 시니어 무대에서도 뛰었어요.”

그러나, 데 비나테아의 선수 생활은 14살 때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인 골육종 진단을 받으며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화학요법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자 데 비나테아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로 넘어가 좀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됩니다.

첫사랑, 배드민턴으로 돌아오다

다행히도 데 비나테아는 완치되었고, 곧바로 배드민턴으로 복귀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첫 번째는 심판이 되는 것이었죠. 그러나, 국제 자격증을 획득한 뒤 해외 원정까지 경험했지만 결국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위치가 선수로서 코트 위에 서는 것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심판으로서 빛을 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어요. 배드민턴과 저의 연결 고리는 언제나 열정과 의욕이었습니다. 코트 위에서 즐기고, 뛰어다니고, 상대를 꺾는다. 심판으로 배드민턴 곁에 있고 싶었지만 즐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심판은 제가 가지지 않은 기술들이 필요한 역할이었어요.”

심판으로 참가하던 국제 대회 중 하나에서 데 비나테아는 장애인 배드민턴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애인 배드민턴의 대회들은 아주 먼 나라들에서만 열렸기 때문에 데 비나테아가 실제로 장애인 배드민턴에 도전해 본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2010년, 팬 아메리칸 장애인 배드민턴 선수권이 브라질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포기했어요. 대학 졸업 논문도 연기했고 인턴 자리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훈련에 돌입했어요.”

“주어진 시간은 단 한 달 반. 하지만 수년 전에 잃었던 내 꿈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브라질로 떠나기 3주 전, 데 비나테아의 의족이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정형외과 의사와 함께 창의력을 발휘해 의족을 고쳐냅니다. 그 대회에서 뛴다는 것만이 중요했던 데 비나테아는 결국 단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과테말라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서 데 비나테아는 다시 시상대에 올랐고, 이번에는 3위를 기록했습니다.

장애인 배드민턴 혁명

리마가 2019 팬 아메리칸과 파라팬 아메리칸 게임 개최지로 가장 적합하다고 지역 대중들과 스포츠 지도자들을 설득하는데는 데 비나테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9 리마에 장애인 배드민턴 종목이 포함된 것도 데 비나테아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데 비나테아는 코트를 구하고 연습을 위한 셔틀콕과 라켓을 마련한 뒤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도 배드민턴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열정 덕분에 페루에서 장애인 배드민턴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10년 전 이 종목을 시작했고, 지금 우리는 정말 강해졌습니다. 세계 챔피언도 한 명 있고 세계 선수권 메달들도 여럿 보유했어요. 남미에서 두 번째로 강한 나라이며 모든 세부 종목에서 40명 이상의 선수들이 세계 랭킹에 올라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리마 2019에서 페루가 가장 큰 성공을 거뒀던 종목이에요.”

“장애인 배드민턴은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제 선수들은 페루에서 유명 인사들이 되었고,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다들 귀를 기울여줍니다. 이렇게 눈에 보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런 결과는 스포츠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효과를 거둬오고 있어요.”

기사제공: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