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디드릭슨: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올림픽 전설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창던지기에 참가한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 (Photo by Getty Images)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창던지기에 참가한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 (Photo by Getty Images)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3월 한 달간 스포츠와 사회를 모두 변화시켰던 여성 스포츠인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오늘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메달 행진의 주인공,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의 이야기 입니다.

배경

세상에는 그냥 뭐든지 다 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미국의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도 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죠.

전설적인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딴 별명(십대 시절 치기만 하면 홈런이 나왔기 때문에)을 가진 디드릭슨은 테니스부터 야구, 복싱, 배구, 볼링, 수영 등등 어떤 스포츠 건 손만 대면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한 번은 안해본 운동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 인형놀이요”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던 디드릭슨은 그것을 뺀 다른 모든 종목, 육상까지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을 앞두고 디드릭슨은 올림픽 예선을 겸한 AAU 챔피언십에 참가합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디드릭슨은 최대 20명의 선수들로 구성된 팀들과 같이 경쟁했고, 다섯 종목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여섯 번째 종목에서는 공동 1위를 차지하며 단체전을 혼자 힘으로 우승해버렸습니다.

따라서 올림픽의 '유력한 우승 후보'라는 평가도 디드릭슨에게는 과소 평가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당시에는 한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 최대 세 종목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디드릭슨의 선택은 결국 80m 허들, 창던지기, 높이뛰기의 세 종목이 됩니다. : 달리기 종목 하나, 던지기 종목 하나, 도약 종목 하나.

그리고 그 이후,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다시 보여주지 못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80m 허들 금메달리스트,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 (Photo by Three Lions/Getty Images)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80m 허들 금메달리스트,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 (Photo by Three Lions/Getty Images)

결전의 순간

디드릭슨은 80m 허들의 첫 조별 예선부터 뭔가 특별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를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세계 신기록과 같은 11초8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기록 행진이 이어집니다.

창던지기에서 디드릭슨은 43.69m를 던지며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80m 허들 결선에서는 멋진 질주를 보여주며 또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조별 예선에서 기록했던 세계 타이기록을 넘어 11초7의 세계 신기록까지 작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목, 높이뛰기에 참가한 디드릭슨은 또 한 번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세계 기록과 타이인1.657m를 뛰어넘습니다. 하지만 바가 1.658m로 높여졌을 때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디드릭슨의 마지막 점프는 부적절한 기술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가 되었고, 금메달 대신 은메달을 받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드릭슨은 올림픽 육상의 달리기와 던지기, 도약 경기에서 모두 메달을 따낸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1년 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디드릭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선수로서 저와 아주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스포츠인, 베이브 디드릭슨(1911-1956), 1940년대 중반 골프 코스에서.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미국의 전설적인 스포츠인, 베이브 디드릭슨(1911-1956), 1940년대 중반 골프 코스에서.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2005 Getty Images

그 이후

세 개의 올림픽 메달 획득은 선수에게는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디드릭슨의 정상을 향한 여정은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의 스타는 또다른 종목으로의 도전을 시작했고, 그 종목, 골프에서도 디드릭슨은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1935년에 골프를 처음 시작한 “베이브”는 목숨이 걸린 문제처럼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1956년 그녀의 사망 기사에 “매일 1,000개의 공을 쳤고 손이 아파서 붕대를 감아야 할 상황까지 골프를 쳤다”고 썼을 정도로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노력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아마추어로 디드릭슨은 14개 대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고, 이후 여자 프로 골프 협회, LPGA의 창설에도 기여합니다. 그리고 프로로 전향한 이후에는 31승과 1948, 1950, 1954 US 오픈을 포함한 메이저 대회 10승을 기록했습니다.

육상 무대에서와 똑같이 골프 코스에서도 경이로운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포상들도 따라왔고, 여기에는 '20세기 첫 5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밀드리드 “베이브” 디드릭슨은 올림픽 전설인 동시에 역대 최고의 스포츠 전설 중 한 명으로 올라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