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THE PARALYMPIC GAMES
패럴림픽 대회의 기원은 20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독일의 신경학자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는 하반신 마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 척추 치료 센터를 열었습니다. 환자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 참전 용사였습니다. 구트만 박사는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힘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치료 수단으로 스포츠를 강력하게 지지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트만 박사는 1948 런던 올림픽 개회식 날인 1948년 7월 29일에 이 퇴역 군인들을 위한 첫 번째 스토크 맨더빌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스토크 맨더빌 시와 구트만 박사가 의료 컨설턴트로 근무했던 장애인 군인을 위한 런던의 한 시설인 '스타 앤 가터 홈' 출신의 전직 군인 14명과 여성 전직 군인 2명이 양궁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이와 같은 대회를 조직함으로써 구트만 박사는 결국 패럴림픽 대회로 성장하게 될 새로운 스포츠 대회 방식을 창안했으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상징적인 중요성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실현되기 전까지 직면했던 문제는 절망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반신 마비 또는 사지 마비 남성, 여성 및 어린이의 생명을 구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엄성까지 되찾아주어 보다 행복하고 존경받는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1952년
첫 번째 국제 스토크 맨더빌 대회는 네덜란드 출신의 재향 군인 팀이 영국 팀과 함께 경쟁하는 방식으로 개최되었고, 이후 매년 대회가 열렸습니다.
1954년
국제 스토크 맨더빌 대회는 계속해서 발전하였으며 이 해에는 14개국이 참여하였습니다. 참가했던 대부분의 선수들은 모두 하반신 마비가 있는 선수들로, 물리 치료 프로그램 안에 스포츠를 포함시켜 스토크 맨더빌의 사례를 따랐던 의료진의 병원이나 재활 센터 출신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955년
제4회 국제 스토크 맨더빌 대회는 18개국 200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1960년
첫 번째 패럴림픽 대회로 여겨지고 있는 제9회 국제 스토크 맨더빌 대회는 올림픽 대회 폐회식 6일 뒤인 9월 18일부터 25일까지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개회식이 열린 아쿠아 아세토사 스타디움에는 5천 명이 운집했습니다. 장애인 육상, 휠체어 농구, 장애인 수영, 장애인 탁구, 장애인 양궁, 스누커, 다트처리(다트와 양궁 혼합), 휠체어 펜싱 등 8개 종목에서 23개국 400명의 선수 모두가 휠체어를 타고 참가했습니다.
사진 제공 Fédération Française Handisport
1964년
1964 도쿄 올림픽 폐회식 10일 뒤인 11월 3일부터 12일까지 동일한 장소에서 패럴림픽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는 21개국 375명의 선수가 참가하였으며, 장애인 역도와 60m 달리기 형태의 휠체어 육상 경기가 패럴림픽 프로그램으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스포츠 전용 휠체어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최소 15kg의 무게가 나가는 일상용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스포츠 전용 휠체어는 1980년대 초에 출시되긴 했지만 여전히 자체 제작된 휠체어였습니다. 장애인 육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현대식 휠체어는 앞쪽에 세 번째 바퀴가 있는 독특한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알루미늄과 탄소 재질의 바퀴로 만들어졌습니다. 무게는 약 7kg으로, 처음 휠체어 육상 경기에 사용되었던 휠체어 무게의 절반 수준입니다.
1968년
기술적인 이유로 패럴림픽 대회의 장소가 멕시코시티(올림픽 대회 개최지)에서 텔아비브로 옮겨졌습니다. 11월 4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여기에는 29개국 750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여자 휠체어 농구가 패럴림픽 대회에 첫 선을 보였으며, 오늘날 패럴림픽 대회의 주요 종목인 100m 휠체어 육상 경기도 이 해에 시작되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8월 3일부터 11일까지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패럴림픽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43개국 984명의 선수가 모두 휠체어를 타고 출전했습니다. 1972년 패럴림픽 기간 동안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추진되었는데, 절단 장애인의 대회 참가 권리 캠페인이 펼쳐졌고, 국가 대표단장 및 코치들이 만나 각 종목의 규칙 시행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스토크 맨더빌 대회 조직위원회 내에 각 스포츠 종목별로 소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각 종목의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였고 종목별로 향후 장애 등급 시스템 구축에 대한 보다 독립적인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976년
제5회 패럴림픽 대회는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가 종료된 지 며칠 뒤인 8월 3일부터 11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되었습니다. 40개국을 대표하는 1,657명의 선수(여성 253명 포함)가 참가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절단 장애인(261명)과 시각 장애 선수(187명)가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참가 선수 중 다리 위 절단 장애가 있는 캐나다의 아니 볼트(18세)가 남자 높이뛰기에서 1.86m를 뛰어넘는 놀라운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폐회식에서 대회기간 중 가장 뛰어난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골볼, 사격 및 200m, 400m, 800m, 1500m의 휠체어 육상 경기가 패럴림픽 프로그램에 새로 도입되었습니다. 이 해 대회는 언론 보도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며 캐나다 TV 채널을 통해 매일 방송되었습니다.
첫 번째 동계 패럴림픽도 같은 해인 1976년에 스웨덴 외른셸스비크에서 열렸습니다.
1980년
패럴림픽 대회는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네덜란드 아른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43개국 1,973명의 선수가 참가하였고, 뇌성마비 선수(125명)가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절단 장애인들만이 참여 가능한 좌식배구가 패럴림픽에 데뷔한 대회이기도 합니다.
1984년
이 해 패럴림픽 대회는 두 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6월 17일부터 30일까지) 뇌성마비, 절단 장애인, 시각 장애가 있는 휠체어 및 보행 가능한 선수를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척수 부상을 입은 휠체어 선수들을 위한 대회는 영국 스토크 맨더빌 (7월 22일부터 8월 1일까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에는 45개국에서 2,900명의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절단 장애인 선수(입식 및 휠체어)는 9개 등급으로 분류되었으며, 뇌성마비 선수는 8개, 시각 장애 선수는 3개, 기타 장애 선수는 6개로 분류되었습니다.
1988년
사진 제공 Seoul Organising Olympic Committee/CIO
역사상 처음으로 패럴림픽 대회가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올림픽 대회와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올림픽 폐회식(10월 15~24일) 2주 후 개최되었으며, 60개국 3,057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여러 올림픽 임원들이 두 대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패럴림픽 대회에도 채용되어 특별 훈련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출신 패럴림피언인 무스타파 바디드는 남자 200m, 1500m, 5000m, 마라톤 휠체어 육상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올림픽 대회 시범 종목으로 진행된1500m 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데니스 올러(미국)는 다리 절단 장애인 최초로 100m를 12초 이내에 달리며 서울 패럴림픽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데니스는 당시 11.73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89년 9월 22일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창설되었습니다.
1992년
3월과 4월에는 프랑스의 티뉴와 알베르빌에서 제5회 동계 패럴림픽 대회가 동계 올림픽 대회와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계 패럴림픽은 대회는 9월 3일부터 14일까지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으며, 83개국에서 2,999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패럴림픽 프로그램에 새로 추가된 휠체어 테니스를 포함해 15개 종목으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150만 명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올림픽을 시청했고, 특히 참가 선수 중 거의 절반이 육상 및 수영에 참가했습니다. 하인츠 프레이(스위스)가 단 1시간 30분 만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279개의 세계 신기록이 수립되었으며, 절단 장애를 가진 나이지리아의 아지볼라 아데오예는 100m에서 10.72초, 200m에서는 21.83초의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타니 그레이 톰슨(영국)은 100m, 200m, 400m, 800m 휠체어 육상 경기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는 8월 16일부터 25일까지 제10회 하계 패럴림픽을 개최하였으며, 104개국에서 3,259명의 선수가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56명의 선수들이 신체 및 시각 장애가 있는 선수들과 함께 육상 및 수영 종목에서 경쟁을 펼치면서 패럴림픽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하나 더 세웠습니다.
2000년
제11회 하계 패럴림픽 대회는 10월 18일부터 29일까지 시드니에서 개최되었고 123개국 3,879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함께 자원을 공유하여 내부 직원들과 기타 관계자 모두가 두 대회를 담당하게 된 대회였습니다. 대회 프로그램에는 장애인 양궁, 장애인 육상, 보치아, 장애인 사이클, 장애인 승마, 골볼, 장애인 유도, 장애인 역도, 요트, 7인제 축구(운동 장애가 있는 선수), 장애인 사격, 좌식 배구, 장애인 수영, 장애인 탁구, 휠체어 농구, 휠체어 펜싱, 휠체어 럭비, 휠체어 테니스 등 18개의 스포츠 종목이 포함되었습니다. 여자 선수들은 장애인 역도 경기에 처음으로 참가했고, 휠체어 럭비는 결승전에서 미국이 호주를 32-31로 꺾는 스릴 넘치는 경기 내용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패럴림픽 데뷔를 장식했습니다.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3억 명의 시청자가 패럴림픽 중계를 시청하였으며, 현장에서는 120만 장의 입장권이 판매되었습니다. 스페인은 지적 장애가 없는 선수들이 지적 장애인 척을 한 사실이 드러나 올림픽이 끝난 직후 지적 장애 농구 금메달을 박탈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적 장애가 있는 선수들에 대한 장애 등급 평가 시스템의 개혁이 필수적으로 부각되면서 향후 패럴림픽 대회 프로그램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6월 19일
IOC와 IPC는 패럴림픽 대회의 지속적인 조직운영에 대한 보증 및 보호를 위해 2008 베이징 대회부터 패럴림픽 대회가 항상 올림픽 대회 직후에 개최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스포츠 경기장, 시설 및 선수촌을 활용하고, 대회 참가비와 여행 비용도 같은 수준으로 충당하도록 보장하는 협정에 서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이후 모든 개최 도시는 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를 같이 준비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제12회 하계 패럴림픽 대회가 9월 17일부터 28일까지 아테네에서 열렸고, 135개국에서 온 3,808명의 선수(그 중 17개국이 패럴림픽 첫 출전)가 이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가 공동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첫 대회이기도 합니다. 50개의 해외 방송국 채널과 1,103개의 언론 매체가 이 광경을 취재하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폐회식에서는 패럴림픽 운동의 상징인 아지토스(Agitos)가 현재의 모습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은 첫 번째 패럴림픽 시각 장애인 축구 경기에서 우승했으며, 핸드사이클 이벤트도 첫 선을 보였습니다. 장애인 유도와 좌식배구 여자 경기도 처음으로 개최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대회는 9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렸으며 146개국, 3,951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장애인 조정이 공식 프로그램에 추가되어 공식 종목의 수가 20개로 늘어난 대회이기도 합니다. 언론 보도는 계속해서 증가하였으며, 5,800명의 공인 언론인이 올림픽을 취재했고 이 대회는 80개국에서 38억 명의 TV 시청자에게 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2012년
사진 제공 D. Echelard
런던 패럴림픽 대회는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린 총 164개국이 참가한 대회입니다. 관중들은 패럴림픽의 고향인 영국에서 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270만 장의 티켓 판매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대회는 대중에게 전례 없는 붐을 불러일으켰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습니다. 패럴림픽 대회의 마스코트는 기존 패럴림픽에 대한 찬사로 '맨더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4,237명의 남성과 여성이 참가하면서 마침내 4,00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대기록에 도달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선수를 위한 종목도 이 해에 다시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IPC 회장이었던 필립 크레이븐 경은 폐회 연설에서 런던 패럴림픽을 "역대 최고의 패럴림픽"으로 묘사하며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이곳 런던에서 미래를 향한 길을 찾았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대회의 방송권을 갖고 있던 영국 방송사 '채널4'는 150시간이 넘는 라이브 영상을 송출하며 영국 인구의 69%인 3990만명의 시청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사진 제공 Simon Bruty/OIS-IOC
9월 7일부터 18일까지 리우에서 열린 제15회 패럴림픽 대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60개국에서 4,328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두 개의 새로운 종목(장애인 카누(직선코스)와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이 포함되어 종목이 총 22개로 늘어났습니다. 이 대회는 154개국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온라인을 통한 가장 많은 방송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이 해 패럴림픽 대회는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도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장애인 배드민턴과 장애인 태권도라는 두 가지 새로운 종목이 공식 프로그램에 포함되었습니다.
*'패럴림픽 대회'라는 용어는 1984년 대회부터 IOC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승인하였으며, 1960년부터 1980년까지는 공식적 명칭이 '국제 스토크 맨더빌 대회'로 불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