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 올림픽은 대공황의 시기에, 그리고 당시의 교통사정을 감안할 때 캘리포니아에서도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회 참가자 숫자가 1904 올림픽 이후 가장 적었고, 1928년의 올림픽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수준은 대단히 높았습니다.
콜리세움 올림픽 스타디움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스타디움의 규모와 시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올림픽의 모습이 이 대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개막식 관중 역시 전례 없는 규모였고, 약 100,000명의 개막식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1900년부터 1928년까지 하계 올림픽은 79일 이하로 개최되었던 적이 없었지만, 로스앤젤레스 1932에서는 대회 기간이 16일로 단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회를 시작으로, 15일에서 18일 사이의 대회 기간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처음 도입된 또 하나의 사례는 남자 선수들이 모두 올림픽 선수촌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여자 선수들은 럭셔리 호텔인 채프먼 파크 호텔에 묵었습니다) 또한, 이 대회부터 처음으로 메달 수상자가 시상대 위에 올랐고, 우승자 국기가 게양되었습니다.
영국의 펜싱선수 주디 기네스는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엘렌 프라이스(오스트리아)와의 결승전에서 그녀는 자신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상대 선수의 터치 두 번을 심판이 놓쳐서 점수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참가국: 37
참가선수: 1,332 (여자 126, 남자 1,206)
경기종목: 117
자원봉사자: 해당 없음
미디어: 해당 없음
축구가 정식 종목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습니다.
각국 올림픽 위원회(NOC)가 제출하는 개인종목 참가 선수 수는 종목당 3명으로 제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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