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뜻깊은 장소입니다.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걸고 처음 세계 무대에 나섰던 1948년 제14회 올림픽이 바로 런던에서 열렸거든요.
이영민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 대표팀은 8월 2일 런던의 챔피언 힐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멕시코와 무려 8골을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5-3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는데요, 후반전 중반 들어 3분 만에 2골을 몰아넣은 공격수 정국진이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사흘 뒤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8강전, 상대는 런던 1948 대회 우승을 차지한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 한국은 전반전에만 4골을 내주면서 무너졌고, 결국 0-12로 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상대의 수많은 슈팅을 막아내야 했던 홍덕영 골키퍼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64년이 지난 2012년, 런던으로 돌아온 태극 전사들은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멕시코와 득점 없이 비긴 한국은 2차전에서 후반전에 터진 박주영과 김보경의 연속 골로 스위스를 2-1로 꺾었고, 이어진 3차전에서 가봉과 0-0 무승부를 거두며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8강전: 영국 1-1 한국 (연장전), 4-5 승부차기
한국의 8강전 상대는 다름아닌 홈 팀 영국이었습니다. 8월 4일 웨일즈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7만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동원과 애런 램지의 득점으로 1-1로 팽팽히 맞선 양 팀은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했습니다.
한국은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 기성용이 모두 페널티를 성공시켰는데요, 주전 골키퍼 정성룡이 경기 도중 부상 당하는 바람에 후반전에 교체 투입됐던 이범영이 영국의 마지막 키커 대니얼 스터리지의 페널티를 막아내면서 승리의 주역이 됐습니다.
준결승전: 한국 0-3 브라질
극적으로 4강에 오른 한국. 그러나 준결승전 상대는 네이마르, 오스카르, 티아구 시우바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브라질이었습니다.
8월 7일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전반전 호물루의 선제 골로 앞서나간 브라질은 후반전 들어 다미앙의 연속 골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한국은 0-3으로 패하며 결승 문턱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3위 결정전: 한국 2-0 일본
사흘 뒤인 8월 10일,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의 라이벌전 이상의 의미가 있는 동메달 결정전이었죠.
전반 37분, 페널티 지역 오른쪽 가장자리로 파고들던 박주영이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슈팅한 것이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면서 한국이 앞서나갔습니다.
불안한 리드를 안고 후반전에 들어간 한국은 11분 만에 점수 차를 두 배로 벌리면서 승기를 잡았습니다.
이범영 골키퍼가 전방으로 길게 차준 공이 페널티 지역 한가운데로 침투하던 구자철에게 연결됐는데요, 절묘한 오른발 발리 슈팅이 한 번 튀어오르고 왼쪽 골포스트 안쪽으로 향하면서, 몸을 날린 곤다 슈이치 골키퍼도 손을 갖다댈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동메달🥉을 안긴 마지막 한 방⚽#올림픽 #축구 #구자철 pic.twitter.com/NLBtUc3ezm
— 올림픽 (@Olympic) April 22, 2024
1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노리던 남자 축구 대표팀이 예선 통과에 실패하면서 파리 2024 대회에서 태극 전사들이 뛰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럼 런던 2012 동메달 신화의 주역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활약하던 주장 구자철은 프로 데뷔 후 2010년까지 몸담았던 제주 유나이티드로 돌아와 든든한 최고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본전 결승골의 주인공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 HD에서 플레잉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셀틱 FC를 거쳐 웨일즈의 스완지 시티와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영국 무대를 누비던 기성용은 친정 팀 FC 서울로 돌아와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소년 시절부터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10년 이상 카타르 리그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남태희는 지난해 일본 J리그로 무대를 옮겼는데요, 올해 소속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런던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무대에 도전했지만 브라질 2014 대회에서 실패를 겪은 다음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현장으로 돌아온 지금은 K리그 챔피언 울산 HD의 감독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런던 2012: 한국 남자 축구 선수단 (18명)
- 골키퍼: 정성룡, 이범영
- 수비수: 오재석, 윤석영, 김영권, 김기희, 황석호, 김창수
- 미드필더: 기성용, 김보경, 백성동, 남태희, 구자철, 박종우, 정우영
- 공격수: 지동원, 박주영, 김현성
감독: 홍명보 / 코치: 김태영, 박건하, 이케다 세이고, 김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