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QS 상하이 스포츠클라이밍 인터뷰: 김자인 - 그렇게 스타는 영웅이 된다 

올림픽예선시리즈(OQS)

김자인이 파리 2024 출전권을 위해 올림픽예선시리즈 상하이에서 볼더와 리드 예선 경기를 가졌고, 돌아온 스포츠클라이밍의 스타의 경기에 전세계 팬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또다시 스포츠클라이밍의 드라마 하나를 연출한 그와 Olympics.com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4 기사작성 Haeyoung 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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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image supplied by OIS/IOC. Olympic Information Services OIS.)

올림픽예선시리즈(OQS)의 첫 날, 상하이의 볼더 경기장에는 환호성에 이어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스타 김자인의 등장으로 관중들은 연신 '퀸!'을 외치며 흥분했지만 4개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48명중 46위라는 성적을 낸 그에 대한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주 종목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볼더와 리드 합산 성적이 중요한 올림픽예선시리즈에서 46위는 결코 예선을 통과하기에 쉬운 성적표는 아니었습니다. 십대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20대 초반의 선수들의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스포츠에서 역시 출산과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걸까, 이대로 우리의 퀸이 예선탈락으로 대회를 마무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날이 밝고, 김자인의 주종목인 리드 경기가 있었던 OQS 두 번째 날, 그는 벽에 붙은 캣우먼처럼 보였습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이렇게 아름다운 선을 만드는 종목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이라도 추는 발레리나처럼 우아했습니다. 다음 홀드로 손을 뻗을 때마다 그 작은 체구보다도 길어보이는 팔에 잡힌 단단한 근육이 수십년간의 훈련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72.0 포인트. 리드 세부종목 여자 최고 기록에, 2위 64.1점과의 큰 점수차. 그는 '넘사벽' 리드여제의 자존심을 지켰을 뿐 아니라, 단숨에 합산 성적 17위로 29계단을 올라서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어제 매우 부진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더 신중하게 해보려고 노력했고요, 오늘 등반 자체는 만족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된다는 것

예선 11위의 성적으로 김자인 선수와 함께 준결승에 진출한 서채현은 자신의 롤 모델은 '김자인'이라고 늘 이야기해왔습니다. 비단 서채현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역사, 아니 전세계 스포츠클라이밍 역사에서 뺴놓을 수 없는 레전드로 김자인은 이제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습니다. 2009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숱한 금메달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섰던 소녀이며 청년이었던 김자인은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됐고, 자신이 개척한 길을 따라온 수많은 후배들의 든든한 대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채현이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만 2019년부터 함께 경기에 참가했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파트너 같은 기분이에요. 채현이가 저를 통해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채현이를 통해 자극을 많이 받고 있어요. 너무 소중한 동료죠."

스포츠클라이밍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서채현 이도현과 같은 선수들이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에는 김자인의 독보적인 활약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김자인이 경기를 보며 자란,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새로운 세대니까요.

"(이)도현이의 부모님을 잘 알아요. 그분들도 훌륭한 클라이밍 선수셨고, 함께 경기도 나가고 했거든요. 정말, 도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그 성장과정을 제가 지켜봤어요. 도현이 뿐만 아니라 (송)윤찬이도 마찬가지고요. 이제 더 어린 선수들이 계속 든든하게 잘 해줄 거라고 믿고, 저도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어서, 같이 훈련할 때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김자인의 롤모델, 고(故) 고미영 등반가

수많은 선수들이 김자인을 롤모델로 주저없이 꼽을 때, 과연 이 독보적인 선수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명한 외국의 클라이머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을 때, 그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름을 내뱉었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신 앞선 수많은 선배들이 계셨어요. 고(故) 고미영 등반가가 그런 분이세요."

고미영. 우리에겐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보다는 비운의 알피니스트로 유명한, 바로 그 산악인 고미영. 등산과 등반의 매력에 빠져, 안정적인 공무원의 자리까지 던져버렸다는 그는 사실 한국의 1세대 여성 스포츠 클라이머였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10년 사이 6번의 우승 및 4번의 준우승을 했으며 세계 랭킹 5위를 기록, 스포츠클라이밍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정말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그분이 한참 선수로 활동하셨어요. 그리고 2004년에 참가한 첫 월드컵에 함께 출전하기도 했고요.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동료로 대해주셨죠. 정말 좋은 조언과 이야기로 저를 응원해주셔서 당시에 많은 힘이 됐고,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고미영은 오르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아이스클라이밍까지 도전,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랐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나이 서른 여덟이 되던 해 알피니스트로 전향하여, 세계 최초 여성 14좌 완등을 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산들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2009년,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다 실족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함께 등정했던 산악인들이 다시 그 슬픔의 산을 되돌아가 결국 그의 시신을 수습해 되돌아오는 TV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산악인 고미영의 뜨겁고 위대한 삶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은퇴하신 후 알피니스트로서 다양하게 활동을 하실 때도 때마다 연락을 주셔서 정말 잘 하고 있다 응원해주셨죠."

김자인의 얼굴이 그와의 추억으로 잠시동안 먹먹해졌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로서는 첫 올림픽인 파리의 경기장에 서겠다는 목표를 우선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내 그는 울먹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올림픽은 임신으로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에는 꼭 출전하고 싶어요. 제가 아이를 낳고 되돌아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파리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아요. 고미영 선수도 저 위에서 저더러 잘하고 있다, 응원하실 거라고 믿고요."

파리에서 '라스트 댄스'를 꿈꾸는 원조 스포츠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Copyright 2023 Jan Virt, all rights reserved.)

사실, 30대 중반, 결혼과 출산,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를 딛고 다시 경기를 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특히나 세계 최고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한 그이기에, 그가 '박수칠 때 떠나겠다' 했더라도 우리는 응원했을테니까요. 하지만, 김자인은 왕관을 꾹 눌러쓰고 내려오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도전을 끝까지 해내고 내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도 리드의 여제는 매 경기마다 새로운 드라마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메달이 아닐지라도요. 그렇게 어제의 여왕은 내일의 영웅이 됩니다. 그가 메달을 따든 그렇지 않든, 결국 파리로 향하든 그렇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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