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클라이머 톰 오할로란, 일생의 꿈을 이룰 준비를 마치다

톰 오할로란은 올 여름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이번 대회를 통해 정식 종목으로 데뷔하는 스포츠 클라이밍(*이하 '클라이밍')의 호주 최초 참가자를 목표로 합니다.

촬영 2020 Getty Images

"'올림피언'으로 불리는 것은 꽤나 비현실적인 경험입니다."

"어떨 것 같나요?"

호주 출신의 클라이밍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 쿼터를 확보한 뒤 톰 오할로란은 이와 같이 답했습니다.

그 올림픽 쿼터는, 작년 12월에 열린 IFSC 오세아니아 선수권에서 오할로란이 호주 대표팀 동료 선수 3명과 경기를 펼친 끝에 1위 자리에 오름으로써 얻은 것이었습니다.

브리즈번 태생인 그의 어릴 적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죠.

지난 2016년에 클라이밍이 스케이트보딩, 야구/소프트볼, 서핑, 가라테와 함께 2020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공식 채택되기 이전부터 클라이밍을 해온 오할로란은, 위 대회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도쿄 2020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입니다. 단 4년 전에 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되었어요.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영 선수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 선수들이 누구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은 이제 막 올림픽에 들어갔어요."

"'올림픽' 없이 클라이밍 인생 전부를 보냈습니다. 저 역시 아주 경쟁력 있는 클라이머가 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올림픽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니까, '와, 어릴 때 꿈을 이룰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2000년 올림픽 개막식을 봤을 때부터 갖게 된 그 꿈을 말이에요."

2000 시드니 올림픽이 개최국 호주에 남긴 영향력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개막식의 여운은 호주 대표팀이 올림픽 주경기장에 입장하던 장면부터 캐시 프리먼이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로서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던 장면까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때 8살이었던 오할로란도 브리즈번에 위치한 집에서 가족들과 개막식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올림픽이 무엇인지에 관해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이게 다 무슨 난리야'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을 뿐이지만요.

몇 년 후 12살이 되자 오할로란은 브리즈번의 지역 체육관에서 클라이밍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7년 동안은 호주 국가대표로 여러 번 선발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뒤 여행을 비롯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모은 그는 2011년에 짐을 챙겨 브리즈번에서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블루 마운틴, 클라이머의 낙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내인 아만다, 6살 난 딸 오드리와 함께 아직도 그림 같은 블루 마운틴에 살고 있습니다.

블루 마운틴 거주 기간에 사실 '경쟁'은 그와 거리가 먼 단어였습니다. 실제로 7년 동안 단 한 개의 대회에만 참가하면서 그는 야외 클라이밍의 자유를 오롯이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클라이밍이 도쿄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오할로란도 계획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호주에 수입된 '닌자 워리어'라는 유명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한 적도 있는, 이제 28살이 된 오할로란은 그 당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경쟁 스포츠, 언론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이 버전의 이상적인 클라이밍을 계속 이어가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이건 정말로 멋진 현실 도피스러운 취미나 라이프스타일 같았으니까요."

"그 후 저도 올림픽에 도전해야겠다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올림픽 무대에 서는 기분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림픽에 나서 본 클라이밍 선수가 없으니까요. 다른 선수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겠네요. 아는 사람 중에 올림피언이 없으니까."

현실을 잊다

큰 바위를 앞에 두고 어떻게 이를 등반할지 고민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 자체로 벅찬 일이겠으나, 오할로란은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받는 인물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든 간에 야외 클라이밍을 가면 제 안의 스트레스가 날아가버린다고 생각해요. 제게는 클라이밍이 마치 명상 같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시드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블루 마운틴, 이 곳에서 오할로란이 클라이밍하는 모습은 그의 유튜브 채널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영상들 속에서, 스스로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오할로란이 느끼는 흥분감과 성취감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야외 클라이밍이 오할로란에게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스포츠, 세 가지 종목 - 클라이밍 선수의 속 이야기

도쿄 2020에서 클라이밍 금메달리스트는 리드, 볼더, 스피드 세 가지 종목의 종합 성적으로 결정됩니다. 따라서 클라이밍에 배정된 총 금메달 개수는 여자부, 남자부 하나씩, 총 2개인 셈입니다.

스포츠 클라이머들은 대체로 예의 세 종목 중 한 가지 종목에 특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클라이밍 대회에서 각 종목이 분리되어 있고 우승자도 따로 가리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올림픽에서 채택한 컴바인 방식은 처음에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할로란은 오히려 이 방식이 천재적인 발상이라고 봅니다.

오할로란: "기존과는 다른 유형의 선수, 즉 올라운더를 등장시키는 성적 산출법입니다. 올라운더가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세 종목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생각건대 더 인상적인 일이에요. 세 종목의 과제를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선수에게는 완전히 다른 정신력과 전략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개별 종목처럼 합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 종목을 합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정말 특별한 위치를 만든 것이라고 봐요."."

선수들은 리드, 볼더, 스피드 각 종목에서 다른 전략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음가짐도 가져야 합니다. 오할로란은 연습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스피드 클라이밍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 진행되든 기본적으로 수직 상방으로 뻗은 똑같은 등반 루트를 이용하므로 '머슬 메모리'가 경기 소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습니다.

피드 클라이밍에 대해 "출발점으로 가서 생각을 버리고 근육의 기억에 경기를 맡기는 것, 스피드 클라이밍에 임하는 선수들이 바라는 바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볼더(또는, 볼더링)는 퍼즐이나 루빅 큐브처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종목입니다. 등반해야 하는 벽을 앞에 둔 순간 클라이밍 선수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길을 잡아야할지부터 등반 루트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까지, 수백만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가죠.

"다른 방해 요인들은 다 통제해 놓고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훈련에서 시뮬레이션 해 보는 것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기본적으로, 4분 시간 제한을 걸어두고 그 시간 동안 집중해서 생각한 뒤 벽을 타면서 압박감을 직접 느끼는 겁니다. 빠르고 분명하게 생각하면서 루트를 해석하고 상황을 판단해야 해요."

마지막은 리드입니다.

"리드도 스피드나 볼더와는 결이 다릅니다. 리드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울 필요는 없지만, 몸에 긴장을 최대한 풀고 움직여 가는 것이 관건입니다."라고 전한 오할로란은 선수들이 자신의 움직임에 결단력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벽을 오르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움직임을 잘못 계산했다거나 생각보다 루트가 어렵다거나 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한 발짝 물러서 상황을 재빨리 재검토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계속 나아가야 해요."

도쿄에서 올림픽 스포츠 클라이밍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역사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선수는 스피드와 볼더, 리드 사이에 명확히 구분되는 전략과 훈련 방식, 신체 움직임이 모두 필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은 적응력에 대한 스포츠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가 배워오고 있는 적응력.

오할로란에게도 적응력은 그가 IFSC 오세아니아 선수권에서 외운 주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작년) 3월로 예정되었던 올림픽 예선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그 일정이 연기되면서, 생계유지용 직장을 잃은 상태였던 오할로란은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2019년에서 2020년에 걸쳐 호주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 대규모 산불의 영향으로 그가 다니던 여행사 'Scenic World' 건물이 거의 전소했기에 그의 실직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죠.

심지어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체육관이 다 폐쇄됐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교훈을 여러 차례 얻었습니다. 그냥 적응하고, 내 통제가 아닌 것들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자.

"적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합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없나요? 조금 더 세게 밀고 나가도 되는 곳은? 어디가 벽돌이고 어디가 돌파할 수 있는 종이인가요?"

Tom O'Halloran
촬영 2020 Getty Images

올림픽 출전을 위한 자체 비용 조달

올림픽 개최가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 오할로란은, 가능한 한 대회에 잘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짜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계획은 완전무결하지 않았습니다: 훈련 비용을 자체 조달해야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자금 지원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재, 각 스포츠 조직이 대회 운영 및 엘리트 체육 프로그램 진행에 관한 보조금 수령 자격을 얻으려면 일정한 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공식 절차를 거쳐 국가의 인정을 받은 스포츠 조직에는 자금 지원 및 코칭 프로그램, 스포츠 연구소에 대한 접근권이 부여되는데, 특히 스포츠 연구소에는 체력관리 프로그램, 코치진, 영양사, 스포츠 심리학자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오할로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뉴사우스웨일즈 주에는 (*위와 같은 스포츠 조직이) 없어요. 자금 지원 신청도 불확실한 상태인 셈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보조금 관련 정책이 잘못 시행되고 있음이 드러난 작년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파로 자금 지원 신청안 인가 과정이 일제히 중단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할로란은 호주스포츠재단을 통해 자체 모금 홈페이지를 개설함으로써 올림픽 출전 준비 과정에 필요한 재정적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지금, 어느 정도는 정부가 선수들에게 지원했어야 할 자금의 부족분을 모금하려는 중인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몇몇 후원자들이 약간의 금전적 지원을 제공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자금 관련 문제와 더불어, 오할로란은 올림픽 개막 전에 해외에서 개최되는 클라이밍 대회 참석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도 비용, 전염병 유행기에 해외 국가에 방문하는 문제, 실전 경험 등 고려할 요소가 다양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오할로란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장소 이동이나 경기 참여 등에 관해 감안할 요인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올림픽까지의 길에 놓여있는 몇 번의 국제대회 참가 기회를 놓쳐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하는 것도 중대한 사안이죠."

"주어진 조건 하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국제대회에 참가해 실전 경험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플랜B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말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는) 이른 아침을 체육관에서 보내는 것부터, 일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나 선수의 삶을 산다는 것까지, 그가 직면한 어려움에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오할로란은 그 '어려움' 앞에서 행해온 노력 중 무의미한 것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오할로란은 이것이, 그러한 어려움 전부를 능숙히 다루는 마치 '인형 술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묘사했습니다.

"맞닥뜨린 곤경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들은 아무도 모르게 삶의 일부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8년 전에 떨쳐내고 이 교훈을 얻었어야 해, 그랬다면 이것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거야.' 같은 말은 지나친 해석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냥 출전해서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했을 뿐일 수도 있어요.."

"삶이라는 여정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제가 클라이밍 안팎에서 배우고 희생해온 것 모두의 결과로 여겨집니다."

"정말이지 엄청난 여정입니다. 결국에는 '그 안의 모든 것이 가치있었다'라고 느껴졌죠."

이제 그는 21년 전에 품은 꿈이 실현될 수도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된다면, 그는 비단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호주와 전세계의 클라이밍을 위해서 새로운 역사를 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