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희: "다시 태어나도 핸드볼을 선택할 거예요"

기사작성 정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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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 Eunhee (KOR) women's handball
촬영 GETTY IMAGES

2024 파리 올림픽 대회 개막을 불과 3개월 앞두고 프랑스로 파견될 대한민국 선수단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구기 단체 종목에서는 유일하게 파리행 티켓을 확보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헨리크 시그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지난해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홈 팀 일본에 25-24로 역전승을 거두고 2024 파리 올림픽 대회 본선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는데요, 그 경기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의 승리를 확정지은 마지막 골까지 터뜨린 11번 선수가 바로 류은희였습니다.

로스앤젤레스 1984 대회 이후 한국의 11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앞장선 류은희는 베이징 2008 대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던 아픔을 딛고 일어나 런던 2012, 리우 2016, 도쿄 2020 대회를 거쳐 어느덧 네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Olympics.com은 이달 초 파리 2024 핸드볼 본선 조추첨이 끝난 이후 류은희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최근 한국 여자 대표팀이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네 번째 도전을 앞둔 각오를 들어봤습니다.

Olympics.com (이하 Olympics): 얼마 전 파리 2024 올림픽 대회 핸드볼 조추첨이 있었는데요, 한국은 노르웨이, 독일, 슬로베니아, 스웨덴, 덴마크와 함께 A조에서 경쟁하게 됐습니다. 같은 조에 속한 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류은희: 많은 유럽 팀들이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고 수준도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갔다고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쉬운 경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경기를 100 퍼센트의 전력으로 다 해야 할 것 같아요.

Olympics: A조에 배정된 여섯 개 팀들 중에서 네 팀이 8강전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한국의 8강 진출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시는지, 그리고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류은희: 일단 첫 번째 목표로 8강에는 올라가고 싶어요. 올림픽은 한 경기, 한 경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말씀하셨다시피 같은 조에 모든 팀들이 피지컬부터 스피드까지 우리나라보다 강하지만 우리만의 경기 스타일로 풀어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Olympics: 작년 12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유럽 팀들을 상대로 모두 패하면서 1승 5패를 기록하는 데 그쳤는데요, 지난 대회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류은희: 이길 수 있었던 경기들도 충분히 있었는데 경기를 뒤집는 힘이 조금 약했던 것 같고, 많은 선수들이 처음 나가는 세계 대회였기 때문에 어려운 경기를 했던 것 같아요. 경험이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올림픽에 가기 전에 실전처럼 유럽 선수들과 경기나 훈련을 한다면 또 다른 모습을 올림픽에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Olympics: 지난 세계선수권을 통해서 몇몇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오스트리아와 첫 경기에서 11골을 넣은 센터백 우빛나 선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류은희: 처음 손발을 맞춰봤는데 투지와 근성도 있고 하고자 하는 마음도 강한 선수인 것 같아요. 딱 이 한 선수만 얘기하는 것보다 모든 선수들이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해줬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더 나은 선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Olympics: 헨리크 시그넬 감독님은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우리 팀에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선수가 부족했다"면서 "유럽의 핸드볼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밝혔는데요, 현재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은희 선수의 생각은 어떤가요?

류은희: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해요. 일단 피지컬도 부족하고 그런 선수들과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없다 보니 대처하는 것도 늦고 완전 다른 스타일의 핸드볼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유럽에서 경기를 하다가 아시아권 대회를 가면 스타일을 바꿔서 해야하는 상황이 생겨서 초반에 적응을 해야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꼭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유럽 선수들과의 경기 감각과 경험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헨리크 시그넬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감독

촬영 2017 Getty Images

Olympics: 헝가리 무대를 밟기 전인 2019/2020시즌에 프랑스 리그의 파리 92 팀에서 뛴 경험이 있는데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바람에 결국 국내로 복귀하면서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이번 올림픽 대회를 통해 파리로 돌아오게 된 소감과 파리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류은희: 처음으로 간 유럽 팀이었고 한편으로는 매우 미안하게 생각이 드는 구단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계약을 다 마치고 오지 못했던 게 저에겐 아직도 미안한 감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파리는 현재 제가 있는 동네보단 더 큰 도시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볼 거리도 많지만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진 못했던 것 같아요.

Olympics: 프랑스에서는 핸드볼에서 동료 선수가 던져준 공을 공중에서 받자마자 그대로 슈팅하는 것을 '쿵푸'라고 한다는데요, 현지에서 쓰는 재미있는 표현들을 아신다면 혹시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류은희: 여기 팀 [죄리 ETO KC] 내에서는 지금 말씀하신 플레이스타일을 '팟타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정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조금 특이하게 이름을 짓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나온 표현인 것 같아요.

Olympics: 핸드볼은 팀 경기인 만큼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혹시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나요?

류은희: 서로 존중은 하지만 자기의 생각을 과감하게 얘기하는 문화가 좋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서로를 잘 알아가게 되고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고 많은 아이디어로 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떠나서 선수 대 선수로 생각하고 책임감을 갖고 하는 게 한국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Olympics: 지난 세 번의 올림픽 – 런던 2012, 리우 2016, 도쿄 2020 – 대회에 참가하셨는데요,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류은희: 당연히 런던 올림픽이 될 것 같고, 그때는 어린 나이에 패기로 겁도 없이 했던 것 같아요. 많은 부상 선수들이 나왔지만 그 상황들을 잘 이겨내고 4강에 올라간 것을 포함해 모든 대회기간이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리우나 도쿄 때는 제가 100 퍼센트 몸상태는 아니어서 퍼포먼스가 썩 좋지 않았고 대회 후에 만족이 되지 않았던 것 같네요.

Olympics: 베이징 2008 올림픽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이야기를 과거 인터뷰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이제 네 번째 올림픽을 앞둔 지금의 기분은 어떤가요?

류은희: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고, 더 강해지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벌써 네 번째 올림픽 대회인데요… 네 번의 올림픽이 되니, 같이 뛰었던 선수들은 지금 없고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제가 같이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잘 합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Olympics: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이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해 오셨는데요, 선수 생활에서 어떤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을 하셨나요?

류은희: 부상이 항상 저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멀리 몇 달 뒤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하루에 해야할 일들을 해나가면서 그 기간들을 잘 견뎌나갔던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코트에서 뛰고 있었던 것 같네요. 물론 긍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어요!

Olympics: 핸드볼이라는 종목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혹시 핸드볼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나요? 만약에 다른 종목을 골라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운동을 하고 싶으신지요?

류은희: 핸드볼의 매력은 다른 종목과는 달리 몸싸움이 허용되니까 파워풀한 경기와 스피드한 리듬의 경기를 60분 동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핸드볼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고, 만약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핸드볼이라는 종목을 선택할 것 같아요. 다른 종목을 고른다면 축구를 좋아했기에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