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험멜: 코비를 가드한 경험과 아르마니 선수로 뛴다는 것, 그리고 인생의 큰 질문들에 대한 대답

미국 대표팀의 3x3 농구 스타, 로비 험멜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케빈 듀란트를 막았던 일화는 캐묻지 않으면 들을 수 없죠. 도쿄 2020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중요한 올림픽 예선 토너먼트 개막 전날, 로비 험멜과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NBA 시절의 일화에 더해 성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와 커리어의 황혼기에 도전하는 금메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촬영 2015 Getty Images

미국 대표팀의 3x3 농구 선수, 로비 험멜은 최근 Olympics.com과의 인터뷰에서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당신의 커리어는 성공적이었나요?’ 하고 묻는다면…”

“글쎄요. 꽤 복잡한 답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다 아니다가 확실하지 않으니까.”

이제 32세인 험멜이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농구와 함께했다는 것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농구가 “그냥 매우 중요한” 곳인 미국 농구 신화의 중심,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험멜은 “저는 경기에 뛰는 걸 사랑합니다. 항상 그랬어요.” 라고 말합니다.

마이클 조던이 남긴 거대한 영향의 중심, 시카고랜드라 알려진 지역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험멜은 농구를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났고, NBA에서 보낸 두 시즌과 유럽에서의 세 시즌은 어렸을 적 꿈을 이룬 자기 커리어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파라조 고등학교 농구 대표로 뛰고 있던 17살 때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너는 앞으로 NBA에서 뛰고 해외에서도 뛰며 올림픽에도 도전할거야’ 라는 말을 해줬다면, 저는 당장 ‘그걸로 할게요’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험멜은 그 질문의 다른 단면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어두운 순간들이나 의구심들을 좋게 포장하는데는 관심이 없는, 드문 종류의 솔직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합니다.” 라고 덧붙인 험멜은 자신이 경험한 심각한 부상들을 쭉 읊었습니다. 척추골 골절, 8개월 동안 두 번의 수술을 포함해 세 번 진행한 무릎 수술, 어깨 수술. 그리고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아무런 경고 없이 깊고도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진 그 경험.

203cm의 신장에 친근한 미소를 가진 험멜은 신인 TV 해설자 다운 조심스런 톤으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퍼듀 대학 1학년을 마쳤을 당시의 저에게 누군가가 ‘너는 NBA에서 2년밖에 못 뛰어’라는 말을 해줬다면 저는 ‘그건 참 실망스럽네요.’ 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NBA에서 보낸 두 시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뛰었던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험멜의 얼굴은 밝아집니다. 체육관에 메아리치는 농구 공의 소리와 하드우드 바닥에서 나오는 농구화의 마찰음을 사랑하게된 인디애나 출신의 한 소년에게 그것은 농구에 바치는 열정적인 기도였습니다.

코비, 듀란트와 한 코트에서

2014년 12월, 코비 브라이언트가 마이클 조던의 통산 득점 기록을 깨던 그날, 험멜도 그 코트 위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조던과 마찬가지로 브라이언트도 우러러보며 자라난 험멜은 수줍은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상대 공격 한 번 동안 스위치로 브라이언트에게 붙게 된 겁니다.” 험멜은 브라이언트가 그 공격에서 날렸던 끔찍한 슛의 영상을 아직도 휴대폰에 가지고 다닙니다. “제가 코비를 가드한 건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GettyImages-459390838
촬영 2014 Getty Images

브라이언트만은 아니었습니다. 험멜은 케빈 듀란트를 포함해 최고에 속하는 선수들을 여럿 상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팀버울브스의 동료 코리 브루어가 세 번째 파울을 범하며 당시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의 스타이자 장차 NBA MVP 2회 수상자 및 챔피언이 될 듀란트를 막는 임무는 험멜에게 주어졌습니다. “1쿼터의 마지막 2분 30초동안 듀란트와 저는 타겟 센터에서 1대1 대결을 펼쳤습니다.” 험멜은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와 만났던 일을 거의 애석해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금방 알게 됩니다. 이것은 사나이들의 진검 승부이며 심장이 약한 사람들이 뛰어들 자리가 아니란 사실을요.”

그리고 덴버에서의 하루가 있었습니다. 전도유망했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한 15득점 13리바운드의 맹활약. “제가 확실히 여기 속한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여기, 이 수준에요.”

물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건강한 로비 험멜이 NBA 커리어를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었을지는 지금와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퍼듀 대학에서 그가 쌓아온 기록들에는 프로에서도 완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험멜은 퍼듀에서 862리바운드, 268어시스트, 132스틸, 112블록을 기록했고, 네 번의 NCAA 토너먼트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약속되던 그런 영광의 시절 중에 부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농구에서 험멜이 보낸 최고의 시즌이자 보일러메이커스를 3연속 NCAA 토너먼트에 진출시키고, 빅 텐 토너먼트에서는 MVP로 선정되었던 3학년 때, 험멜은 척추뼈가 으스러지며 등에 보호대를 찬 채 시즌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부상, 그리고 또 부상

“8개월 동안 무릎이 두 번 나갔습니다.” 무릎 인대 부상과 함께 시작한 4학년은 커리어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수술과 재활 후인 10월에는 복귀 후 첫 훈련에서 똑같은 인대를 다시 한 번 다쳤습니다. “그때는 건강한 몸을 그냥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어두운 시기도 있었어요. 내가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그런 시간.”

GettyImages-141701591
촬영 2012 Getty Images

고등학교 시절 험멜의 코치였던 밥 펀터는 퍼듀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종합했습니다. “재능을 갖춘데 더해 착하기까지 한 이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겨야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롭에 대한 칭찬은 아무리 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했을 거예요.” - 밥 펀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얼룩졌던 험멜의 NBA 커리어는 미네소타에서의 두 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재다능함에 더해 팀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험멜은 미네소타에서 코트의 거의 전 포지션을 소화해 냈습니다. 당시 미네소타 감독이던 플립 선더스는 2015년 당시의 험멜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로비는 그냥 이기적이지가 않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팀을 더 생각해요. 이게 그의 본질입니다. 인디애나 출신이라고 하면 기대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선수였죠.”

그 모든 역경들과 어긋난 꿈에도 불구하고 농구에 대한 험멜의 열정은 그대로였습니다. NBA를 떠난 후에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한 시즌을 뛴 뒤 이탈리아에서 올림피아 밀라노 소속으로 또 한 시즌을 소화한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탈리아 밀라노에 와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팀을 위해 뛰고 있었습니다.” 

올 여름 올림픽에 데뷔하는 3x3 농구에서의 보너스 커리어까지 자신을 이끌어온 이런 우여곡절들을 되돌아보며 험멜은 웃었습니다.

3x3, 뿌리로의 회귀

3x3 농구는 반코트에서 팀 당 세 명의 선수(+교체 선수 1명)가 한 개의 골대를 놓고 경기합니다. 길거리 농구의 빛나는 조상이자 오래 전, 농구의 기원과도 맞닿아 있는 종목이죠. 뉴욕 할렘의 러커 파크나 인디애나 농장의 먼지쌓인 헛간 외벽에 설치된 수제 후프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팀 동료, 카림 매덕스와 함께 프린스턴 USA 소속으로FIBA 3x3 투어 참가를 위해 전 세계를 돌며 겪었던 바쁜 도로 여행들을 설명하며 험멜은 웃었습니다. 

“레이커스와의 경기를 위해 전용기를 타고 LAX로 향하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NBA 출신 선수는 최고급 호텔과 정말 편안한 여행 같은 측면에서 너무 귀하게 생활한 측면이 있어요.”

호화로움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은 험멜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험멜은 그저 농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할 뿐이니까요. 센다이, 이스탄불, 베이징, 제다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FIBA 3x3 투어. 삶은 고난과 성취로 만들어진다는 관점을 가진 험멜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합니다. “저에게는 그냥 농구만이 아닌, 그 이상의 일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로 향하기 전, 마지막 한 발자국

험멜은 이미 선수 은퇴 이후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분석가이자 라디오와 TV 해설자로 오래 전, 자신의 꿈과 재능을 꽃피웠던 그 NCAA 토너먼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경기를 누가 중계하느냐에 대해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간 정도의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요.”

그리고 전 프로 선수들에게는 정말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진로 선택에 대해, “경기를 뛰는 것과 똑같지는 않아도, 그 다음으로 좋은 일 정도는 됩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GettyImages-1189059732
촬영 2019 Getty Images

그리고 스튜디오에서의 삶을 살아가기 전에, 험멜에게는 코트 위에서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져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두 번째 기회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험멜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죠. 올 여름, 도쿄의 눈부신 조명 속에서 그는 조던, 고 코비 브라이언트, 듀란트 – 전설들과 영원한 영웅들 – 가 앞서 이뤄낸 것, 올림픽 영광에 도전할 기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가장 어두운 좌절에서 올림픽 영광을 향한 도전까지 자신을 올려놓은 험멜은3x3 농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강인함은 갖춰야만 합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험멜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질문 한 가지. 그가 어떤 커리어를 보냈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은 2020(2021년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성공을 확신하지만, 재능과 의지를 갖추고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선수들도 그런 목표를 앞에 두면 한없이 겸손해 집니다.

인터뷰의 막바지에서, 험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이번 올림픽은 아주 복잡했던 커리어를 정말 멋지게 마무리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주 복잡한 이야기의 정말 멋진 엔딩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올림픽의 감동을 최대한 즐기는 방법!

라이브 스포츠 이벤트 무료 시청. 오리지널 시리즈 무제한 감상. 독점 올림픽 소식 및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