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모자 길영아-김원호 인터뷰: "김원호 엄마로 살고 싶다는 말, 올림픽 메달 따고 기억해 줘서 감동"
3년 전 2020 도쿄 올림픽 대회에서 사상 첫 한국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면, 올해는 모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한국 올림픽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나은과 함께 파리 2024 대회에서 16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에 혼합 복식 메달을 안겨준 김원호와 올림픽 금, 은, 동을 다 목에 걸어본 배드민턴 레전드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입니다.
길영아 감독은 "원호가 어렸을 때, 엄마가 길영아니까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라고 말을 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범할 수가 없다, 난 메달리스트이니까. 네가 길영아의 아들로 살지 않고, 내가 김원호의 엄마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걸 기억해서 이렇게 올림픽 메달을 따고 이야기 해줘서 감동했어요." (길영아)
길영아 감독은 1992년 배드민턴이 처음 정식 종목이 됐던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심은정과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애틀랜타 1996 대회에서 장혜옥과 은메달을 합작했을 뿐만 아니라, 김동문과 함께 혼합 복식 초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입니다.
김원호는 파리까지 날아온 어머니를 보며 "직접 이 큰 무대를 지켜봐 주셔서, 큰 추억이 됐어요. 행복한 날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원호-정나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용대-이효정의 금메달 이후 16년 만에 혼합 복식 배드민턴에서 한국에 메달을 안겨줬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홀로서기에 성공한 김원호는 더 행복하게 배드민턴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도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항상 해주셨거든요. 그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돼서 기분이 좋고, 배드민턴을 좀 더 즐겁게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길영아 감독은 가장 치열했던 김원호-정나은 조 대 서승재-채유정 조의 대결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는데요, 경기 중 처음으로 구토를 한 아들 김원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같은 운동을 해봤기 때문에 그 힘겨움을 아는데…구토를 할 정도면 정말 끝까지 왔다는 거잖아요. 그걸 견디고 이겨낸 대단한 모습에 정말 눈물 났어요." (길영아)
길영아 감독은 이어서 "저는 쓰러질까 봐 걱정했는데 쓰러지지 않고 고비를 넘겨줘서 이렇게 자랑스러운 은메달리스트가 된 것 같아요"라며 배드민턴 선배보다는 엄마로서의 마음을 마음껏 전했습니다.
힘든 길을 잘 알고 있는 챔피언 어머니는 왜 아들이 험난한 배드민턴의 길에 들어서는 걸 말리지 않았을까요?
"제가 지도자로 활동하며 아이가 체육관에 자주 놀러 오면서 너무 재밌어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힘들었던 일은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달리기도 잘하고, 배드민턴 라켓을 갖고 노는데도 너무 잘 치고,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시키게 됐어요. 이 어려운 길을요."
길영아 감독은 세계 최강 듀오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스웨이-황야총 조의 결승 직전 김원호에게 "고비가 너무 많았었고, 또 중국 선수들이 워낙 강하니까 마음껏 편안하게 즐기라고 이야기했어요"라며 하늘이 정해주는 올림픽 메달임을 한 번 더 강조했다고 합니다.
값진 은메달과 함께 최초 모자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 김원호는 자신의 올림픽 데뷔전에 대한 엄격한 평가도 잊지 않았습니다.
"더 올라갈 곳이 있어서 저한테는 동기부여가 될 것 같고요. 올림픽을 통해서 제가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할지 등 많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갑니다." (김원호)
길영아 감독 역시 아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메달도 값진 은메달이지만 아직 젊으니까 다음 올림픽에 또 도전할 수 있잖아요."
"원호도 승부 근성이 매우강해요. 외적으로는 조용한데, 내적으로는 운동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많기도 하고 자만할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처럼만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에는 꼭 올림픽 금메달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길영아)
과연 김원호도 어머니 길영아를 따라 4년 뒤 두 번째 올림픽에서 시상대 정상에 오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