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허약했던 중학생 소녀가 유도를 시작해 건강을 얻고, 포기하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걸어 올라 결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마치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보게 하는 것 같은 48kg급 이혜경 선수.
과거를 보며 후회하고, 미래의 목표만을 좇다 실수하기보다는, 현재를 또렷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는 그와 Olympics.com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시안게임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저는 올림픽을 보면서 달려가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그냥 나에게 하나의 경기일 뿐, 지금 무너진다면 나는 또 제자리인 선수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하나의 숙제를 풀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나중에는 무덤덤해진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몸이 너무 약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정적인 취미 위주로 시키셨거든요. 피아노처럼 뭐든지 다 앉아서 하는 것들이요. 그러다 이사를 가고 중학교를 입학하게 됐는데, 거기 유도부가 있었던 거예요. 신입부원을 뽑는다고 해서 하루 해봤는데, 그냥 운명처럼 이게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막거나 하는 분들은 아니라서, 일주일 정도 계속 조르니까 '정 그러면 해봐라, 일주일만 해보면 알게 되겠지'하고 허락하신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장염을 달고 살아서 초등학교 때는 거의 매번 죽만 먹고 컸어요. 그 정도로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아예 땀 흘리는 운동 자체를 안 했죠.
솔직히 전 정말 이게 재밌어 보여서 했어요, 건강 생각은 거의 안 했고요. 매일 정적인 것, 공부, 이런 것만 하니까 유도가 더 재밌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유도를 잘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일단 중학교 때 제일 낮은 체급이 42kg이었는데 제가 그 때 32-33kg밖에 안됐거든요. 일단 체중을 10kg나 불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을 하고 가면 또 살이 빠지니까, 보약을 챙겨 먹으면서 체중을 늘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또 몸에 열이 많다 보니 조금만 피로가 쌓이면 코피가 계속 나는 거예요. 여름에는 거의 운동을 할 수도 없었고요. 선생님들이 제가 쓰러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건강해지더니 체중도 늘어나고 그 이후로 장염을 걸려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예전에 복싱을 하셨어요. 그 시절에는 훈련이 많이 독했기 때문에 제가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건강해지니까 제가 운동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더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지켜봐 주신 것 같아요. 성적도 안 나오는데 왜 계속하냐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없으세요. 네가 좋아하니까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라 하면서 믿고 지지해주셨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잖아요. 저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굉장히 늦게 가졌어요. 사람들이 목표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냥 '부상없이 선수를 오래 하고 싶다'고만 말했어요. 어느 날 절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올라가는데 ‘저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니'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너무 멀어요, 아직 한참 가야 하잖아요'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거예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게 바로 국가대표야. 너의 미래다'라고 하셨어요. 너무 멀 것 같다고 느끼겠지만 생각보다 그 목표는 상당히 가까이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도 1등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운이 좋으면 3등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대학연맹 대회에서 처음으로 1등을 하게 됐어요. 그 때도 이게 운이 좋아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하지만, 한 번 해보고 나니까 또 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계속 올라온 것 같아요.
일단 그냥 유도가 너무 좋았어요. 저는 뭘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해내고 싶은 집념이 강한 편이에요. 물론 다른 친구들이 메달을 따면 부럽기도 하지만, 제가 자존감이 좀 높았던 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저걸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패하는 걸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경기에서 지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내 실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내 훈련량이 부족하니까 더 훈련하고 배우면 된다 생각했어요. 저는 비록 시합에서 지더라도, 훈련에서 배웠던 기술을 쓰고 이용해보는 것들 자체가 정말 즐거웠어요.
아, 비슷해요(웃음)
저는 이런 국제적인 종합대회에 나가본 것도 처음이었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나간 것도, 아시안 게임 선발전도 처음이었어요. 이런 모든 ‘처음’ 때문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8강에서 그 몽골 선수(바푸도지 바산쿠, 현 세계 랭킹 2위) 대비를 정말 열심히 했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한판승)가 나와서 준결승에 진출을 하게 됐어요. 그 카자흐스탄 선수(아부자카노바 아비바, 현 세계 랭킹 3위)와 경기를 하는데, 오늘은 정말 이기겠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감도 있었어요. 그 자신감에 제가 욕심을 부렸던 게 아닌가 그래서 실수가 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왜 나한테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정말 운이 잘 안 따라줬거든요. 이렇게 늦게 빛을 보게 되면서 3학년 때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밀리면서 국제 대회를 진짜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모든 생각이 겹치니까 너무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고,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시안 게임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저는 올림픽을 보면서 달려가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그냥 나에게 하나의 경기일 뿐, 지금 무너진다면 나는 또 제자리인 선수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하나의 숙제를 풀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나중에는 무덤덤해진 것 같아요.
네, 침착하기도 하고 제가 많이 긍정적이에요.
어쨌든 목표는 다들 금메달이라고 하지만, 저는 금메달은 뭔가 더 최종적인 목표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최종적인 목표만 보고 달려가면 오히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매번 그런 것 때문에 실수가 나온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물론, 당연히 금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그보다 선수 각각을 매번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서 이 선수는 이렇게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생각하며 준비했더니 결국 목표에 도달한 것 같았어요. 금메달을 따서 기분은 좋은데, 아직도 난 해야 할 것이 많다라는 걸 그 순간 느꼈던 것 같아요.
뭔가 잘 해내고 싶다. 그냥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잘 해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큰 것 같아요.
저는 오래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잖아요. 저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굉장히 늦게 가졌어요. 사람들이 목표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냥 ‘부상없이 선수를 오래 하고 싶다’고만 말했어요. 어느 날 절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올라가는데 ‘저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니’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너무 멀어요, 아직 한참 가야 하잖아요’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거예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게 바로 국가대표야. 너의 미래다’라고 하셨어요. 너무 멀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목표는 상당히 가까이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저도 꿈을 꿔야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있게 됐는데요. 저는 이런 꿈을 만들어주시고 이끌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끼거든요. 그분들에게 보답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파리 올림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Related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