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2024 Getty Images
2024 세계선수권 유도 최중량급에서 39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한국 유도 역사를 쓴 김민종.
듬직한 체구로 매트 위 마동석처럼 세상 모든 상대 선수들을 단번에 메칠 듯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그이지만, 실제로 만난 김민종은 가족을 향한 무한하고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없이 겸손했고, 생각보다 자신이 수다스럽다며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천상 장난꾸러기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다양한 매력이 응축된 이 큰 남자, 김민종이 Olympics.com에 2024 파리 올림픽으로 향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배부르게' 이야기했습니다.
네, 맞아요(웃음).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던 3월달이었어요. 저희가 삼남매예요. 위로 형이 있고, 여동생이 있어요. 제가 워낙 활동적이기도 하고 그 때 이미 힘이 세서 형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고 욱하는 성격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유도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저를 유도장에 데려가시더니 여기서 예의를 좀 배우라고 하셨어요.
아니요. 형도 초등학교 때 키가 180cm 될 정도로 피지컬이 좋고, 축구 선수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 때 이미 몸무게가 70kg 정도 될 정도로 체구가 큰 편이었고 5학년 때 대회 나갈 때는 100kg 정도였어요.
어릴 때 땅바닥에서 뒹굴고 놀고 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막상 그런 장소가 여의치 않고요. 놀 때도 이불 깔고 거기서 뒹굴고 했는데, 유도장에 가면 온 바닥이 매트로 되어있고 앞구르기 옆구르기 뒷구르기 하면서 놀다 보니까, 그런 재미에 빠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술적인 걸로 상대를 메칠 때의 쾌감, 그런 것이 있었어요.
체육관에서 취미로 유도를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전국소년체전에서 1등을 했거든요. 그 때 선수를 해야겠다 싶었죠. 주로 대련을 성인부 아저씨들과 했어요.
솔직히 그 때는 자랑스러움보다 너무 힘들었어요. 어릴 때도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선수반에서 운동을 했거든요.
그런 슬럼프는 스무 살쯤 한 번 크게 왔던 것 같고요. 당시엔 힘들긴 해도, 제가 워낙 승부욕이 세고 지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했어요. 또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그만둔다는 말을 못 한 것도 있어요(웃음).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을 위해 경험하고 배우는 대회라고 생각하고 임했기 때문에 여전히 큰 마음의 동요는 없어요. 주위에서 39년 만이라고 얘기하니까 그제서야 알게 됐고요. 다만, 이전 4번의 대회 모두 결승까지 갔지만 다 졌거든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었는데 그걸 깨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올림픽을 향하는 과정에 있어서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유명한 선수(테디 리네르)가 출전하지 않았거든요. 올림픽에서 만날 것을 대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최근에 그런 사진들이 많았네요(웃음). 부모님 마장동 정육점이라는 키워드로 기자분들이 엄청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네. 정말 고기는 잘 먹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우리가 돈은 없지만 고기는 많다 이렇게 농담을 하실 정도로 많이 먹었어요(웃음). 아무래도 이런 환경이다보니까 저희 집안 사람들이 다 몸집이 좋아요. 여동생도 키가 174cm 거든요.
어렸을 때는 오히려 저희 형이 축구를 잘해서 집에서 기대도 많이 하고 부담을 많이 주고 했어요. 저는 오히려 방목형으로 내버려 두고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분위기였고요. 그런 스트레스 없음이 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체급에 비해 키가 작다 보니까,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감자 요리나 토마토를 꿀에 절인 것이나 이런 야식들을 많이 해서 가져다 주시고 했고요.
저희 집이 먹는 게 최고다 이런 집이라서, 정말 많이 먹으면서 자랐어요(웃음).
심지어 다른 학교 럭비부 코치님이 농담반 진담반 럭비하자고 하신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유도만큼 저한테 잘 맞는 스포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대방을 메칠 때의 시원함도 있죠. 하지만 그 자체보다 제가 열심히 훈련했던 여러가지 기술 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서 상대방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바로 메치게 될 때, 그 쾌감이 엄청나게 커요.
저는 저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는 편이에요. 규율, 규칙, 규제도 많고 한데 이런 걸 지키면서 살아가는게 편하고 익숙하고, 오히려 이게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요. 그리고 유도를 할 때 정말 그냥 재밌고 행복해요.
제가 키가 작지만 체중이 가볍지는 않고. 힘도 밀리지 않고 스피드가 있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달리기가 빠른 편이었어요. 아무래도 최중량급은 좀 둔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는 선수가 많아서 제 장점들이 잘 활용되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제가 성급하게 하려고 하거나, 흥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 부분을 많이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저는 언제나 플러스 체급으로 뛰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이 체급에서 내가 최초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왔어요.
올림픽을 위해 경험하고 배우는 대회라고 생각하고 임했기 때문에 여전히 큰 마음의 동요는 없어요. 주위에서 39년 만이라고 얘기하니까 그제서야 알게 됐고요. 다만, 이전 4번의 대회 모두 결승까지 갔지만 다 졌거든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었는데 그걸 깨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올림픽을 향하는 과정에 있어서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유명한 선수(테디 리네르)가 출전하지 않았거든요. 올림픽에서 만날 것을 대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잘하는 사람 만나면 좀 더 잘하는 편이에요. 뭐, 지면 어때, 지더라도 본전이지 하는 생각으로 자신있게 밀어붙이는 면이 있어요.
제가 키가 작지만 체중이 가볍지는 않고. 힘도 밀리지 않고 스피드가 있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달리기가 빠른 편이었어요. 아무래도 최중량급은 좀 둔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는 선수가 많아서 제 장점들이 잘 활용되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제가 성급하게 하려고 하거나 흥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 부분을 많이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그 때는 어리기도 했고, 경험이 좀 적었다는 느낌도 있어요. 마음과 의욕이 앞섰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실수도 나오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어요. 비워내려고 많이 노력했고, 지난 올림픽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평소에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일부러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지 않고 침착하게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에펠탑이 보이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파리 가서 택시 부르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대표팀 형이랑 그냥 킥보드를 타고 에펠탑을 다녀왔어요. 영화 속에서 보는 것 같은 거리가 펼쳐져 있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메달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후회없이 하자'에 일단을 초점을 맞추려고요. 하늘이 감동해야 올림픽 금메달을 준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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