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cs.com 인터뷰 직전, 한 매거진의 화보가 우연히 눈에 띄었습니다. 유도복이 아닌 데님 스커트, 오버롤 등을 선보이며 다양한 소품을 들고 선 김하윤의 발랄한 모습에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어쩐지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몸집이 큰 상대방 앞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단단한 정신력, 상대의 약점을 단번에 찾아내는 매서운 눈매의 매트 위 김하윤을 주로 만나왔습니다. 그러나 뱅 헤어의 단발을 흔들며 매트에서 내려올 때마다 언뜻언뜻 보여주던 그 얼굴, 장난기 넘치는 미소가 슬며시 삐져나오던 찰나의 순간들을 생각하니 스물 넷 최중량급 유도 선수 김하윤을 만들어 낸 다양한 배경들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며칠 전에 머리를 잘랐어요." 트레이드 마크 단발머리를 만지작대며 그가 경쾌하게 말을 떼었습니다. "무릎 부상은 좀 있지만, 컨디션은 지금 아주 좋아요. 첫 올림픽 출전이니까, 후회없이 모든 걸 다 쏟아보고 싶어요."
김하윤은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이는 여자 +78kg 최중량급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었습니다. 지난 아부다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어 2024 파리 올림픽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더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래도 긴장을 잘 안 하거든요. 그래도 큰 대회 가면 긴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괜찮았어요. 특히 아시안게임 때는, 제가 그렇게 큰 시합을 뛰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보다도 상대 선수들이 더 많이 긴장을 했더라구요(웃음)."
시합이 잘 풀리지 않거나 스스로를 많이 자책하는 날도 베개에만 머리를 대면 잘 자고, 다음 날 일어나면 기분이 다시 괜찮아지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김하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위 '멘탈관리'마저 타고난 금수저 흙수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외국의 큰 선수들을 마주할 때 더욱 큰 장점이 됐습니다.
"저는, 그런 큰 선수들을 만나면 오히려 아 더 괜찮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들은 체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제가 잘 버텨내면 쉽게 지쳐요. 저는 헤비급 중에서는 꽤 체력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선수들은 기술을 걸면 아예 잘 안 걸리거나 걸리면 아주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한판으로 이길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주요 대회의 메달을 획득하며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졌는데요. 이에 대해서도 김하윤답게 자존감 높은 솔직한 대답을 이어갑니다.
"아시안게임 전에 출국할 때 보면 기자들이 막 몰려오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나갈 때는 그런 관심이 거의 없었거든요. 다른 종목 선수들 보면서, '와,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 인터뷰 해보고 싶다, 주목 받고 싶다' 했어요. 그런데 막상 금메달을 따고 그렇게 되니까, '아,이게 힘들구나, 아무나 셀럽이 되는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구요(웃음)."
대부분 선수들이 초등학교 때 유도 선수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달리, 김하윤은 중학교 3학년에 유도를 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습니다. 학교 내에 유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활동적인 일들을 좋아했어요. 체육 시간만 되면 눈이 반짝반짝해졌어요. 하라는 건 다 잘했죠. 제가 몸집이 큰데도 이단뛰기 같은 걸 꽤 했거든요. 체육 선생님이 유도를 하셨던 분이라 제게 추천하셨어요. 취미로 체육관을 갔는데 제가 소질이 있었나봐요. 낙법도 처음부터 해내니까, 바로 유도를 가르쳐 주셨죠."
태권도, 검도, 테니스, 골프 등 이미 다양한 운동을 취미로 하던 중 알게 된 유도의 매력에 뒤늦게 빠져버린 그는 아예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곧장 전국대회로 진출해 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남들은 몇 년이 걸려야 얻게 되는 실력을 단숨에 따라잡은 그는 유도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저는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선수 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조금 덜 자유로웠을텐데, 저는 그 십대 때 하고 싶은 건 다 해봤거든요. 수업도 다 들었고, 학원도 가고, 후회없이 그 시기를 즐겼어요. 누릴만큼 누렸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도 이러한 루틴과 생활이 답답하다거나 일탈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 자체가 없었어요."
선수 생활 시작의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어려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수록, 고비는 여러차례 찾아옵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물론, 과연 이것이 나의 선택인가, 내가 즐기며 하고 있기는 한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또래 친구들과 상의할 수 없는 많은 고민이 그들의 삶 곳곳에 놓여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김하윤은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고비를 피할 수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존감과 당당함은 확실히 가족관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롤모델로 꼽은 사람이 유명한 선수도, 유명한 위인도 아닌 아버지였을 정도로요.
"무조건 저희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면 완벽하게 끝내려고 하고, 일이 잘 안되더라도 끝까지 해내시려고 하거든요. 용기, 끈기 이런 것들이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저는 누구를 위해서나 거창한 목표를 위해 운동을 한다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시작했으니까 끝을 보자', 이런 생각으로 하는 것 같아요.
(김하윤, Olympics.com)
마지막으로 그의 2024 파리 올림픽의 목표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누구를 위해서나 거창한 목표를 위해 운동을 한다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시작했으니까 끝을 보자', 이런 생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제 스승님인 조민선 교수님 이후로 올림픽 금메달이 없기 때문에, 제가 스승님을 뒤를 이어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목표를 일단 두고 있고요."
파리는 경기와 훈련을 위해 자주 가기 때문에 옆 동네 가는 것처럼 딱히 더 흥분될 것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자꾸 예전 장미란 선수의 배짱과 결기가 겹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만약 '멘탈의 정석'이 필요하다면, 김하윤 선수를 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자기 확신의 추를 갖고 있는 그.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그 추를 정확히 무게 중심에 두고 만들어낼 한판승을 볼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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