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점퍼' 우상혁 단독 인터뷰: "훗날 제 자식에게 아빠가 운동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 인상 쓰는 모습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경기장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선수를 꼽으라면, 이제 우상혁을 빠뜨릴 수 없겠죠? 우상혁은 도쿄 2020 이후 '월드클래스' 선수로 우뚝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스마일 점퍼'라는 글로벌 애칭도 생겼습니다. Olympics.com이 한국 육상 스타 우상혁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스마일 점퍼'로 거듭난 계기와 파리 2024 목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벼랑 끝에 서야 넘어가더라고요. 간절해야 넘는 선수가 됐네요."
내년 7월 26일에 개막하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커리어 세 번째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우상혁은 지난 두 번의 올림픽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히 올림픽 꿈을 이룬 리우 2016 대회는 엔트리 마감일 하루 전날에 기준기록을 통과해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을 확정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상혁은 "(2016년) 7월 10일. 날짜를 아직도 기억해요. 오사카에서 경기가 있다고 했고, 협회에서도 올림픽에 갈 수 있는 마지막 시합이니 최선을 다해서 뛰고 오라고 이야기해 주셨죠"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은 2.25m였고, 기준기록은 2.29m였습니다 (파리 2024 기준기록은 2.33m).
우상혁은 2014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에서 2.24m를 넘어 개인 최고 기록 경신과 동시에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육상 최고 유망주로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전 막연하게 1년에 2cm씩만 더 넘자고 생각했지만, 2015년에 2.24m 이상을 넘지 못했고, 급기야 2016년이 되자마자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죠."
"그때 생각해 보면 발목이 안 좋은데 자꾸 2.29m를 넘자고만 생각하니깐, 경기력은 더 안 좋아졌죠. 그래서 그냥 '올림픽 못 가겠구나'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자마자 2.25m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오사카에서 열린 2016 국제육상선수권대회에서 2.26m까지 넘게 됩니다.
"오사카에서 또 퍼스널 베스트(PB)를 깼죠. 저를 포함해 마지막 리우행 티켓을 잡기 위해 간절한 선수들이 많았아요. PB가 2.28cm인 쟁쟁한 일본 선수들도 있었지만, 결국 1cm 차이인 기준 기록을 못 넘겼고, 저 혼자 남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바로 2.29m를 올렸어요. 그리고 전 넘었어요."
우상혁은 웃으며 도쿄 올림픽 랭킹 포인트 마감 이틀을 앞두고 랭킹 포인트를 반영하는 시합에서 2.31m를 넘으며, 또 한 번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과 함께 2회 연속 올림픽을 확정 지은 날도 떠올립니다. 당시, 우상혁은 기준 기록 2.33m를 넘지 못했지만, 랭킹 포인트 최종 순위 31위로 상위 32명 안에 들어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밤새 순위가 업데이트될 때까지 이틀을 기다렸어요. 저는 벼랑 끝에 서야 넘어가나봐요 (웃음)."
우상혁은 간절한 마음으로 향한 도쿄 2020에서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최고의 무대에서 2.35m라는 개인 실외 최고 기록을 작성하고, 최종 4위에 올랐습니다.
'스마일 점퍼'로 다시 태어나다
2.31m의 개인 최고 기록을 보유했던 우상혁은 2020 도쿄 올림픽 결선에서 무려 4cm나 높은 2.35m를 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메달에 도전하기 위해 생애 첫 2.39m에서 점프를 시도했습니다.
물론 넘지 못했지만, 그는 웃으며 "괜찮아!"라는 최고의 명언을 남깁니다. 그는 결선 내내 춤사위를 동반한 개성 넘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스마일 점퍼'라는 글로벌 애칭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상혁은 '스마일 점퍼'와는 거리가 먼 '앵그리 점퍼'였습니다.
"리우 올림픽 출전을 극적으로 일궈냈지만, 올림픽에 가서도 엄청 예민했죠.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더라고요."
압박감과 더불어 2019년 정강이 부상까지 겹치며 우상혁의 선수 생활은 더욱더 침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시니어 데뷔 이후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던 그는 그해 처음으로 국가대표 자격도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때 그에게 손을 건넨 사람은 현 스승 김도균 코치였습니다. 김도균 코치는 원래 장대높이뛰기 코치였지만, 지금은 우상혁과 함께 높이뛰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상혁은 "2020년에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잖아요. 이렇게 가다간 올림픽을 못 뛰겠거니 해서 '그냥 편하게 지내자'라고 생각했어요. 방황도 많이 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그때 코치님이 '너 좀 아까워. 내가 봤을 때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등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여쭈어봤죠."
"김도균 코치님이 미국의 높이뛰기 코치님과 이야기해서, 그분이 '나도 우 괜찮은 것 같아. 한번 같이 해보자'라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마냥 놀지 말고, 당장 이 기회를 잡자고 생각했죠. 사실 돌아갈 곳이...제 고향 대전뿐이었는데 이렇게 돌아갈 순 없었어요."
우상혁은 바로 김도균 코치가 있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우상혁은 김도균 코치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팩트폭행'이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했다고 합니다.
"전 높이뛰기를 너무 좋아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어는 순간 제가 사랑하는 종목을 재밌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 영상에도 사진에도 전혀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갈수록 예민한 모습만 보이는 저에게 하루는 김도균 코치님이 딱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너 이거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 전 그때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우상혁은 김도균 코치의 진심 어린 말에 웃는 얼굴로 자신이 사랑하는 높이뛰기를 마주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해온 높이뛰기이고 너무 좋아하는 종목인데 즐기지 못하는 저 자신이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어차피 이 운동은 평생 할 운동이 아니잖아요. 훗날 제 가족이 생기고, 자식한테 '아빠가 이렇게 운동했어'라고 보여줬을 때 웃음기가 하나도 없고 인상 쓰며 '앵그리'한 모습만 있다면 부끄러울 것 같더라고요."
파리 2024: 인생도, 올림픽도 삼세판
우상혁은 올림픽 데뷔전을 회상하며 "올림픽 경험을 한 (한국) 육상 선수가 그렇게 많이 있진 않아요. 그래서 어떤 조언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첫 올림픽 때 더욱 압박감이 심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쿄 올림픽으로 향할 때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는 이 대회를 저번 처럼 암울하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쿄에서는 올림픽 선수촌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대단한 선수들도 보러다니고 사진도 찍고 했죠."
우상혁은 이겨도 져도 본전인 마음으로 그냥 즐겼다고 합니다.
"4년 동안 준비해 온 것을 그냥 후회 없이 하는 게 제일 좋은 방향이라는 것을 배웠죠."
그렇기에 그는 후회가 남지 않게 파리 2024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잘했고, 좋은 추억도 만들었어요. 작년에는 세계선수권 메달의 맛도 봤죠. 이제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올림픽 메달이에요."
우상혁은 지난해 말 경미한 부상을 당했고, 올해 2월 중순 부비동염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런 일들로 쉽게 초조해지 않습니다.
"제가 김도균 코치님과 4년간 함께 하면서 부상 한번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생겼기에 조금 신경이 쓰일 뻔했지만, 코치님도 그냥 편하게 내려놓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올해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고, 우리의 최종 목표는 파리 2024 대회니까요."
우상혁은 시상대 정상에 오르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파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리우에서 못 찍은 사진은 도쿄에서 많이 찍었어요. 뭐든 삼세판이라고 하잖아요."
"이제 남은 것은 메달을 목에 걸고 파리의 상징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예요."
번외 질문: 우상혁 선수에 대해 더 알아볼까요?
Q.1. 군대에 다녀온 뒤 가장 바뀐 점이 있다면?
"군 생활을 하면서 그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 하듯이 군대에 가면 군대의 법을 따라야 하잖아요. 그런 규칙을 따르다 보니깐 뭔가 참을성도 많아지고, 침착한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조급함이 컸거든요.
군대에 가기 전에는 어린 우상혁이었다면, 제대 후에는 조금 더 성숙해진 우상혁이 된 것 같아요."
Q.2. 징크스나 시합 전 루틴은?
"루틴은 안 만들어요. 루틴이 없어야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수 있죠. 만약에 루틴을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멘털 붕괴가 되는 거죠.
그런 것도 시합을 많이 뛰면서 배웠어요. 그래서 루틴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지금은 딱히 없어요."
Q3.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걸로 잘 알려진 우상혁 선수가 제대하고도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아직도 저보고 군인이냐고, 언제 제대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웃음). 2017년부터는 짧은 머리를 하다가 다시 길렀다가 했어요.
제대 이후 머리를 길면 멋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온전히 높이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머리가 길면 머리도 신경써야 할 것 같더라고요. 머리가 날려서 뭉개졌나 그런 기분이 들잖아요.
또 주변에서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 개개인의 차가 있지만 저는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해요."
우상혁의 2023 시즌: 주요 경기 결과
- 2023년 2월: 아스타나 2022 아시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은메달 (2.24m)
- 2023년 5월: 도하 2023 다이아몬드리그 라운드 1 준우승 (2.27m)
- 2023년 5월: 요코하마 2023 세계육상연맹(WA) 골든 그랑프리 우승 (2.29m) – 한국 육상 사상 최초 우승
- 2023년 6월: 피렌체 2023 다이아몬드리그 라운드 3 준우승 (2.30m)
- 2023년 6월: 정선 2023 전국육상선수권대회 우승 (2.33m)
- 2023년 7월: 스톡홀름 2023 다이아몬드리그 라운드 7 (2.16m)
- 2023년 7월: 방콕 2023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우승 (2.28m)
한국 육상: 역대 세계선수권 메달
- 2011년 김현섭: 남자 20km 경보 동메달🥉
- 2022년 우상혁: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