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선수, 난민 패럴림픽 선수단 창단을 돕다

샤흐라드 나사즈푸르는 2021년 8월에 열릴 도쿄 2020으로 자신의 두 번째 패럴림픽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촬영 2021 Getty Images

2016 리우 올림픽에 난민 선수단을 참가시킨다는 소식을 듣게 된 샤흐라드 나사즈푸르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봄, 저는 IPC에 리우 2016에 참가할 난민 팀을 만들자고 제시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IOC가 올림픽을 위한 팀을 만든다는 소식을들었을 때, 그럼 패럴림픽은? 하고 생각했어요.”

원반던지기에서 주니어 선수로 국제 대회에 참가해왔던 나사즈푸르는 IPC의 리더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난민 선수단을 지원할 제도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때, 나사즈푸르는 망명을 위해 이란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IPC의 한 스텝은 그에게 미국 대표팀 합류를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답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사즈푸르는 미국 시민권이 있어야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망설임없이 그는 계속해서 이메일을 보냈고, 몇 달 뒤에는 결국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난민 선수단 구성에 대한 IPC 경영진과 이사회의 관심은 커져갔고, 그 실현 가능성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초반에 보낸 이메일들이 시작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8월, IPC는 난민과 망명 패럴림픽 선수들로 구성된 최초의 독립적인 패럴림픽 팀을 참가 시킬 것이라 발표했고, 나사즈푸르는 그 팀에서 경쟁할 두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 그는 다시 한 번 역경을 넘어야 했습니다.

나사즈푸르가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내렸을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요. 나와의 싸움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그는 상실감을 느꼈고, 가족이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의지해야 할 지도 몰랐습니다.

첫 1개월 반동안 나사즈푸르는 여러 주를 떠돌아다녔고, 마침내 뉴욕주 버팔로에 들어서게 됩니다.

“내일 어디에 있게 될 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 최악이었습니다. 혼자 걸어다니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 같아요.”

버팔로에서 그는 망명자들을 지원하는 버팔로 피스 하우스라는 비영리단체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제 인생을 시작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스포츠를 다시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시작

이란에서 자란 나사즈푸르는 항상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아이였습니다. 뇌성마비로 인해 몸의 한쪽(왼쪽)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먼저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육상과 투척 운동을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정말 즐기는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졌어요.”

나사즈푸르는 두바이에서 열린 2011 IWAS 월드 주니어 챔피언십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란 내의 상황 때문에 거의 3년간 훈련을 할 수 없었고, 2015년 말에는 이란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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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2021 Getty Images

미국에서의 새로운 인생

버팔로에서 지내게 된 나사즈푸르는 운좋게도 버팔로 대학과 지역 사회 안에서 몇몇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코치는 훈련에 도움을 줬고, 이것은 리우 대회에 망명자와 난민으로 이뤄진 선수단을 편성하는 일에 대해 IPC와 나눈 이야기로 다시 이어집니다.

훈련을 시작한 나사즈푸르는 만약 IPC가 난민 선수단을 리우에 보낸다는 계획을 정말로 실행에 옮길 경우, 미국에 온지 단 몇 달 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그 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나사즈푸르는 행동력을 보여줬습니다. 버팔로에서 자동차로 7시간 거리에 있는 뉴저지까지 간 그는 이민국 사무실로 걸어들어갔고, 담당관에게자신의 이민자 신분이 해결되어야만 리우 패럴림픽에 참가해 경쟁할 수 있다는 상황을 설명했고, 결국 해결에 성공합니다.

도쿄 2020을 생각하며

리우 이후 나사즈푸르는 버팔로에서 애리조나로 옮겨갔습니다. 버팔로에서는 추운 겨울 때문에 1년 중 야외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리조나에 도착해 나사즈푸르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그때의 이민국 담당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나사즈푸르의 전화는 담당관의 보이스메일로 들어갔죠.

“저에게 해 준 일들이 제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줬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애리조나에서 나사즈푸르는 이란을 떠나며 중단되었던 대학 학업을 완료할 수 있었고, 애리조나 대학에서 공공정책 학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최근에는 워싱턴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해 글로벌 MBA 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꿈은 스포츠에서 리더가 되고, 운동 선수라는 배경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나사즈푸르는 스포츠 경영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우선시되는 것은 2020 도쿄 패럴림픽입니다.

COVID-19 팬데믹 때문에 많은 선수들은 훈련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사즈푸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훈련했고, 학교는 문을닫았지만 야외 트랙은 계속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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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2021 Getty Images

그러나 몇 개월 전, 아이들이 학교로 복귀하는 것으로 학교 트랙에서의 훈련은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나사즈푸르는 다른 훈련장을 찾는 일을 급하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나사즈푸르는 도쿄 2020 난민 패럴림픽 선수단의 일원이 될 여섯 명의 잠재적 후보 중 한 명으로, 6월 말이면 공식적으로 선수단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 알게 됩니다.

“인원이 많으면 주목도 더 받게 됩니다. 더 많은 선수들이 참가하게 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계속해서 더 커져가기를 바랍니다.”

나사즈푸르는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더 많은 자원들과 난민 패럴림픽 선수단의 주 스폰서가 된 에어비앤비처럼 더 많은 회사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온라인 체험을 열고 있으며 나사즈푸르도 그 호스트 중 한 명으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나사즈푸르는 P&G의 “Athletes for Good Fund” 캠페인에 참가하는 52명의 패럴림픽과 올림픽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이 켐페인을 통해 도쿄 2020을 앞두고 각 선수들은 자신이 선택한 자선단체에 USD 10,000을 기부할 수 있으며 나사즈푸르의 선택은 버팔로 피스 하우스였습니다.

“저에게 해 준 일에 대해 보답해 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사즈푸르는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8천만의 난민들 –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다 - 에게 도쿄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힘든 시간을 견뎌주세요. ‘안돼’라는 말은 정말 많이 듣게 될 것이지만, 그 ‘안돼’를 진짜 답으로 받아들이진 마세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찾으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ralympi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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