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머레이

영국 GBR

테니스

  • 메달
    2
    1
  • 참가
    4
  • 첫 참가
    베이징 2008
  • 출생년도
    1987년
올림픽 결과

선수경력

앤디 머레이

리우 2016에서 영국의 앤디 머레이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테니스 단식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테니스는 1896 올림픽부터 1924 올림픽까지 정식종목이었다가, 1968 올림픽부터 1984 올림픽까지는 시범종목이었습니다. 이후 서울 1988에서 완전히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습니다. 런던 2012 결승전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승리했던 앤디 머레이는 리우 올림픽 개막식 기수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머레이는 4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꺾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머레이는 7:5, 4:6, 6:2, 7:5로 승리해 올림픽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어려웠습니다." 경기 후 피곤해보였지만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의 머레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기 내내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습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큰 대회에서 승리했던 경기 중에서 가장 힘든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정상에 올라 기쁩니다. 그랜드 슬램 결승에서 패한 것을 비롯해 지난 몇 년 동안 힘든 패배를 많이 당했습니다. 분명히 저는 큰 대회에서도 몇 번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런 점이 저의 경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투어에 복귀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머레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히 기술을 갈고닦았습니다. 기질적인 면만을 개선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코치의 면밀한 지도 아래 경기의 모든 면을 향상시켰습니다. 어릴 때에는 글라스고 레인저스에 스카웃 될 정도로 재능있는 축구선수였던 그는 15세가 됐을 때, 축구와는 선수로서 이별을 하고, 테니스에 모든 에너지를 쏟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오래 기다린 돌파구

머레이는 2006년 정상으로 오르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퀸즈에서 첫 ATP 투어 타이틀을 획득했고, 그랜드 슬램 무대에서 성공하는 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08 US 오픈 결승에서 페더러에 패한 머레이는 2010 호주 오픈에서도 다시 페더러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2012 윔블던 결승전에서는 조코비치에 패했고, 2011 호주 오픈 결승에서도 조코비치에 막혔습니다. 그러나 앤디 머레이에게는 올림픽이 커리어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베이징 2008에서는 1라운드에서 패했지만, 머레이는 윔블던의 잔디 코트를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몇주 전에 페더러에게 세 번째 그랜드 슬램 결승전 패배를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경기력이었습니다. 홈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머레이는 2번 시드의 조코비치를 준결승에서 7:5, 7:5로 꺾고 올림픽 결승 한 자리를 예약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머레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숙적이자 당시 세계 랭킹 1위였던 페더러였습니다. 머레이는 첫 번째 세트 여섯 번째 게임에서 서브를 브레이크 한 다음 멋진 서브 게임을 펼쳤습니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페더러가 더블폴트를 범해 머레이가 두 번째 세트까지 가져갔습니다. 세 번째 세트에서는 서브에서 한 포인트 밖에 내주지 않으며 전체 6:2, 6:1, 6:4의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앤디 머레이는 25세의 나이로, 런던 1908에서 조시아 리치가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영국 선수로는 처음 올림픽 테니스 단식 금메달리스트가 됐으며, 머레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당시의 우승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머레이는 형인 제이미 머레이와 함께 출전한 남자 복식에서는 패해서 탈락했습니다. 로라 롭슨과 출전한 혼합 복식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해 두 번째 금메달에 가까웠지만 벨라루스의 빅토리아 아자렌카와 막스 미르니에 패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정점을 찍다

머레이는 올림픽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낸 지, 몇 주가 지난 뒤 US 오픈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꺾고 첫 번째 그랜드 슬램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머레이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영국 선수가 됐고, 페더러, 라파엘 나달, 조코비치와 함께 소위 빅4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윔블던에서도 세르비아의 조코비치를 다시 한 번 꺾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스트레이트 세트를 가져가며 우승한 머레이는 페리 이후 77년 만에 영국에 윔블던 타이틀을 선사했습니다. 이후 2015년, 머레이는 데이비스 컵에서 분전하며, 고국을 79년만에 우승의 영광으로 이끌었습니다. 단식 8경기와 복식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팀 GB는 벨기에에 3:1로 승리해 그 유명한 "샐러드 보울"을 차지했습니다.

머레이는 세 번째 호주 오픈 결승전에서 패하며 2016년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조코비치의 승리였습니다. 머레이는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조코비치는 롤랑 가로스에서도 승리했습니다. 머레이의 두 번째 윔블던 타이틀은 그로부터 몇 주 뒤에 나왔습니다. 머레이는 캐나다의 밀로스 라오니치를 스트레이트 세트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머레이는 리우 2016 타이틀 방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리우 올림픽에서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개막식에서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머레이는 리우 올림픽에서의 모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기수로 입장한 다음 날,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결승전과] 같은 경기를 포함해, 10일 정도 계속되었던 경기는 정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계를 넘을 수 있어서 대단히 행복했습니다."

머레이는 남자 테니스 정상에서 2016년을 마무리했습니다. 머레이는 11월 5일, 파리에서 열린 마스터즈 1000 토너먼트 결승에 오르며 29세 5개월 23일의 나이로 ATP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역대 26번째 세계 1위에 오른 선수였으며 영국 선수로는 1973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습니다. 머레이는 2014년 7월 이후 정상의 자리에 머물렀던 조코비치를 끌어내리고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올림픽 2관왕인 머레이는 다음 날 결승전에서 미국의 존 이스너를 꺾으며 새롭게 차지한 남자 테니스 정상의 자리를 굳히는 동시에 정상 등극을 자축했습니다.

도쿄 2020 경험

머레이는 최근 몇 년간 부상과 씨름해 왔으며, 심지어 2018년에는 엉덩이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투어로 복귀한 머레이는 연기된 도쿄 2020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도쿄 2020을 앞두고 머레이는 앞선 세 번의 올림픽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올림픽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고 도쿄에서 네 번째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서 팀 GB를 기수로 입장한 것은 제 경력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고, 2012년 홈그라운드에서 우승한 것은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머레이는 일본에 도착하자 마자 단식은 기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3회 연속 금메달 획득을 위해 복식 파트너인 조 샐리스버리와의 경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는 8강에 진출했고, 더 이상은 대회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올림픽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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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020

#=5
Men's Doubles
Men's Doubles Tennis
#n/a
Men's Singles
Men's Singles Ten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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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2016

#=17
Doubles
Doubles Tennis
#=5
Doubles
Doubles Tennis
Singles
Singles Tennis
올림픽 결과
결과 대회 스포츠

런던 2012

Doubles
Doubles Tennis
#=17
Doubles
Doubles Tennis
Singles
Singles Ten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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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2008

#=9
Doubles
Doubles Tennis
#=33
Singles
Singles Ten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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